전성기/목록/가요
1. 설명
말 그대로 가수들의 최전성기를 장식했던 시절 범위를 앨범 내지는 연도 단위로 정리한 문서다.
특정 가수의 인지도 및 위치와는 별개로 가수들 저마다의 활동 시기 가운데 음반판매량 내지는 음원순위, 체감인기, 대외적인 성과 등을 모두 포괄한 가장 화려했던 시절로 정리했다. 후술한 전성기 이후의 쇠퇴기 혹은 이후에도 꾸준하게 대외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있지만 후술할 당시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덜 회자되고 있는 시기는 제외한다.
가수들의 나열 순서는 데뷔 순으로 정리했으며 볼드체 부분은 최전성기를 의미한다.
2. 장르별, 가요계 전반적 환경
2.1. 대한민국
- 대한민국 음반 산업 - 1992년 ~ 2002년, 2018년 ~ 현재
- 1차: 2002년부터 음악 산업 시장의 풍토가 음원 위주로 흘러가게 되면서 2001년이 마지막으로 밀리언셀러를 배출한 연도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며 2001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던 god의 4집과 이듬해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쿨의 7집의 판매량 차는 무려 120만여장이다.
- 2차: 방탄소년단의 흥기와 그에 따른 여러 팬덤들의 음반 대량구입으로 인해, 2018년부터 그 이전의 모든 기록들이 다 깨졌으며 지금은 웬만한 보이그룹은 30만장, 걸그룹도 10만장은 기본으로 넘는 전을 뛰어넘는 제 2의 전성기가 왔다.
- 트로트 - 1960년대 ~ 1992년 상반기, 2019년~현재
- 한국 포크송 - 1970년대 ~ 1980년대 초반
- 한국 댄스 음악 - 1992~2001년, 2007~2012년, 2015~2016년, 2018년
- 한국 발라드 음악 - 1986년 ~ 2001년: 이문세-변진섭-신승훈-조성모로 이어진 발라드의 황제 계보와 궤를 함께 한다.
- 한국 록 음악 - 1970년 ~ 1975년(신중현 시대), 1977년(제1회 MBC 대학가요제) ~ 1988년(부활, 시나위의 대마초 파동)
- 한국 록발라드 - 1990년대 말 ~ 2006년: 버즈가 잠시 해체한 영향이 컸다.
- R&B, 소몰이창법 - 2001년 ~ 2007년
- 한국 힙합 음악 - 2004년 ~ 2008년, 2013년 ~ 2016년
- 1차: 에픽하이, 리쌍, 다이나믹 듀오 등의 활약으로 힙합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대이다. 특히 2004년은 역대급 대한민국(국내) 힙합 장르의 명반들이 상당수 발매되었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2차: SHOW ME THE MONEY
- 인디 음악 - 1998년 ~ 2005년 7월 30일[1] , 2009년 ~ 현재: 국카스텐, 몽니 등이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인디 밴드의 이름을 알린 시절이다.
- 후크송 - 2007년 하반기 ~ 2011년
- 역주행 노래 - 1990년대 초반, 2013년 ~ 2018년
- 혼성그룹 - 1994년 ~ 2004년
2.2. 외국
2.2.1. 영미권
- 로큰롤 - 1950년대 후반
- 트위스트 - 1960년대 초반
- 영국 록 음악 - 1960년대 ~ 1970년대
- 디스코 - 1970년대
- 헤비 메탈 - 1980년대
- 미국 힙합 음악 - 1990년대 ~ 현재
- 올드 스쿨 힙합 - 1980년대 중후반
- 웨스트 코스트 힙합 -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중반
- 이스트 코스트 힙합 - 1990년대 초반 ~ 현재
- 서던 힙합(더티 사우스) -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
- 트랩 힙합 - 2010년대 중반 ~ 현재
- 유로댄스 - 198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
- 영미권 틴팝(Teen-Pop) -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
-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딥 하우스, 일렉트로 하우스를 포함한 일렉트로니카 - 2000년대 초 ~ 현재
2.2.2. 일본
- J-POP -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
- 일본 아이돌 - 1971년 ~ 1988년,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 비주얼계 - 1980년대 말 ~ 1997년 - 이 밴드의 전성기와 궤를 같이 한다.
3. 가요 프로그램
- 정통 가요쇼 - 1970년대 ~ 1992년
- TBC의 쇼쇼쇼를 필두로 70년대부터 각 방송사의 가요 쇼 프로그램이 토요일 저녁에 방송되었다.[2] TBC 폐국 후에는 MBC 쇼 2000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가요 쇼 전성기를 이끌었고, KBS는 100분 쇼 - 쇼 86 - 쇼! 여러분 - 쇼 특급 - 쇼 토요특급 - 토요대행진으로 계보가 이어졌다. 1992년 하반기부터 두 프로그램 모두 버라이어티적 요소가 강해지면서 정통 가요쇼의 명맥은 사실상 끊어지게 된다.
- 가요 순위 프로그램 - 1990년 ~ 2000년, 2008년 ~ 2011년
- 대한민국 지상파 가요대상 - 1980년대 ~ 2005년
- 대한민국의 다양한 연예시상식 중 가장 오래된 분야 중 하나로, 8~90년대에는 명실공히 지상파 연말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는 음반시장의 축소와 공정성 문제[3] 로 점점 인기가 하락하게 되었고 KBS와 MBC는 2005년을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열지 않고 있다. 이후에도 올해의 노래상을 뽑긴 했지만 주기적으로 열리지 않고 있으며, SBS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개최한 다음 2014년에 잠깐 시상식 형태를 부활시켰지만 이마저도 2015년부터 다시 폐지되었다.
- 현재 가요시상식은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멜론 뮤직 어워드로 거의 대체되었기 때문에 지상파 가요대상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또한 2006년부터 개최되는 연말 가요 무대도 여러 문제점이 겹쳐지면서 갈수록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 가요무대 - 초창기 ~ 케이블 채널이 생기기 전까지
- 옛날에는 시청률이 40%까지도 호가했으며 지금도 1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 1차: 2009년 ~ 2011년(슈퍼스타 K), 2차: 2018년 ~ 현재 (미스트롯 시리즈)
- 가요 경연 프로그램 - 2012년 ~ 2016년 중반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첫방송부터 2016년 중반
- 최전성기를 구분하자면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 우리 동네 음악대장의 활동 시절이라 할 수 있으며 범위를 넓히면 노래9단 흥부자댁의 활동 시기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
- 나는 가수다 - 2011년 5월 ~ 2011년 8월
-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이 출연했던 시기로 재도전 논란으로 존폐 위기에 놓인 '나는 가수다'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시즌1은 사실상 김범수, 박정현의 전반부와 김경호의 후반부로 나뉜다.
- 너의 목소리가 보여 - 2기 ~ 현재
- 불후의 명곡 - 2007년 하반기 ~ 2008년 상반기
- 불후의 명곡 2 - 2012년 상반기 ~ 2013년 상반기
- 쇼 미 더 머니 - 3 ~ 5기, 9기 ~ 현재
- 슈퍼스타 K - 2010~2012년 (1~3기)
- 언프리티 랩스타 - 2015년 1기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 시즌 3
- 히든싱어 - 2012년 ~ 2013년 (1~2기 시절)
- K팝스타 - 2011년 ~ 2013년 (1~2기 시절), 2016~2017년 (6기 시절)
- 초창기에는 박지민, 이하이, 악동 뮤지션 등이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가요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다.
- 고등래퍼 - 시즌 2
4. 국내 가수
4.1. 남자 솔로
- 남진, 나훈아 - 1970년대 중후반
- 이후 1980년대에 조용필이 이 두 사람의 자리를 혼자 독식했다. 더구나 이들의 출신지역으로 인해 그야말로 볼만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다만 70년대 이후 차이가 생겼는데 남진이 7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면 나훈아는 70년대 이후에도 조용필에 이은 2인자 정도 위치를 유지했다.
- 송창식 - 1974년 <피리부는 사나이> ~ 1984년 <고래사냥>
- 송대관 - 1975년 <해뜰날>, 1992년 <차표 한장>, 1998~1999년 <네박자>, 2003~2004년 <유행가>
- 조용필 - 1980년대 전체
- 물론, 그는 1980년대 대중음악계를 완전히 제패하고 "더 이상 가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라면서 가요 시상식에서 수상을 거부하고 스스로 정상에서 내려온 케이스라서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보면 경우가 다르다. 지금도 앨범을 발매하면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쉽게 1등을 찍는다.
- 현철 - 1988년 3집 <봉선화 연정> ~ 1992년 4집 <싫다 싫어>, 1998~2002년 <사랑의 이름표>, 2005~2010년 <아미새>
- 조영남 - 1987년 <화개장터>
- 태진아 - 1989년 <옥경이> ~ 1993년 <사모곡>, 2000~2004년 <사랑은 아무나 하나>, <잘났어 정말>,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바보>, <동반자>를 연이어 히트.
- 설운도 - 1983년 <잃어버린 30년>[4] , 1991년 <다함께 차차차> ~ 1997년 <사랑의 트위스트>
- 윤수일 - 1982년 밴드 2집 <아파트> ~ 1986년 솔로 5집 <황홀한 고백>
- 1984년에 '아파트'와 '아름다워'로 한 해에 골든컵을 두 번 수상한 당시를 전성기로 간주하여도 무방하다.
- 이남이 - 1988년 3집 <울고 싶어라>
- 김현식 - 1985년 3집 <비처럼 음악처럼> ~ 1988년 4집 <언제나 그대 내 곁에>, 1991년 6집 <내 사랑 내 곁에>
- 사후 발매된 앨범이라 전성기로 간주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만 동년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을 감안하여 커리어적인 전성기로 간주.
- 전영록 - 1985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 1988년 <저녁놀>
- 최성수 - 1987년 2집 <동행, 풀잎사랑>
- 이문세 - 1985년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 1988년 5집 <붉은 노을>, 1991년 7집 <옛사랑>, 1996년 10집 <화무>
- 작곡가 이영훈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던 시절이며, 1985년에 3집으로 골든컵 수상, 1996년에 조조할인이란 곡으로 정상을 차지했던 시절.
- 김정수 - 1980년 그룹 1집 <내 마음 당신 곁으로>[5] , 1991년 <당신>
-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이 곡으로 가요톱텐 골든컵과 당해 가요대상을 차지했다. 특히 방송에서 정장에 중절모자를 착용하고 나와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 김종환 - 1996년 3집 <존재의 이유>[6] ~ 1997년 4집 <사랑을 위하여>
- 김범룡 - 1985년 1집 <바람바람바람> ~ 1987년 3집 <현아>
- 변진섭 - 1988년 1집 <홀로 된다는 것은> ~ 1989년 2집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숙녀에게>[7]
- 박남정 - 1988년 2집 <널 그리며>
- 김흥국 - 1989년 2집 <호랑나비>
- 본인 스스로 전성기로 간주해서 지나치게 추억팔이를 하는 대표적인 가수다. 참고로 호랑나비가 수록된 앨범은 김흥국의 데뷔 앨범이 아니다.
- 이승철 - 1989년 1집 <희야, 마지막 콘서트>, 2002년 부활 8집
~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 1986년 부활 보컬로 데뷔 할때부터 인기가 많았고 김태원의 대마초 흡연으로 부활이 활동 중단 위기를 맞자 팀을 나와 솔로로 1집을 발표하여 빅히트를 기록했다. 허나 그 후 대마초 사건으로 2번이나 구속되면서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다. 출연 정지 이후에는 콘서트 위주로 활동하다가 1996년에 '오늘도 난'이란 댄스곡으로 1위 후보에 여러 번 오른 후 1999년 '오직 너뿐인 나를'이 들어간 6집으로 대박을 쳤고 2002년에는 'Never Ending story'을 통해 부활과 재결합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현재도 히트곡을 많이 뽑아내고 있다.
- 김민우 - 1990년 1집 <입영열차 안에서>
- 앨범 단위로 보면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 있다.
- 윤종신 - 1990년 2집 <오래전 그날> ~ 1996년 5집 <환생>, 2017년 12집 <좋니>
- 이상우 - 1991년 2집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 구본승 - 1994년 1집 <너 하나만을 위해>
- 이승환 - 1995년 4집 <천일동안> ~ 1999년 6집 <당부>
- 김현철 - 1994년 3집 <달의 몰락> ~ 1996년 5집 <일생을>
- 현진영 - 1992년 2집 <흐린 기억속의 그대>
- 김준선 - 1993년 1집 <아라비안 나이트>[8]
- 심신 - 1990년 1집 <오직 하나뿐인 그대> ~ 1991년 2집 <욕심쟁이>
- 박정운 - 1992년 2집 <오늘 같은 밤이면> ~ 1993년 3집 <먼 훗날에>
- 신승훈 - 1991년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 1996년 5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
- 2집 활동곡인 <보이지 않는 사랑>과 <우연히>는 가요톱텐에서 모두 골든컵을 수상한 건 기본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은 MBC에서는 11주, SBS에서는 최장 14주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2집으로 30번 이상 1위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집 활동을 통해 1992년 KBS 가요대상 대상, 골든디스크 대상도 석권했다.
- 3집도 타이틀곡 <널 사랑하니까>가 3~4개월 동안 2, 3위 권에 꾸준히 머물렀으며, 후속곡 <처음 그 느낌처럼>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1993년에는 그 해 많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골든디스크 대상을 2연패하는데 성공했다. 5집은 치열한 1996년 가요계 시기에 맞물러 1위를 많이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1996년 최다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 임재범 - 1991년 1집 <이 밤이 지나면>, 2000년 4집 <너를 위해>,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
- 최종보스의 포스를 내뿜으며 단 3회 출연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 이범학 - 1991년 1집 <이별 아닌 이별>
- 김국환 - 1991년 1집 <타타타>[9]
- 이무송 - 1992년 2집 <사는게 뭔지>[10]
- 이현우 - 1992년 1집 <꿈>, 1997년 4집 <헤어진 다음 날>[11]
- 박진영 - 1995년 1집 <날 떠나지마> ~ 1997년 3집 <그녀는 예뻤다>
- 김민종 - 더 블루 활동 시절 ~ 1996년 3집 <귀천도애>[12] , 1998년 4집 <착한 사랑> ~ 2001년 7집
- 김종서 - 1992년 1집 <대답없는 너> ~ 1996년 5집 <아름다운 구속>
- 이지훈 - 1997년 1집 <왜 하늘은> ~ 1997년 2집 <이별>, 2001년 4.5집 <인형>
- 서태지 -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 2000년 솔로 2집 <울트라맨이야>
- 김경호 - 1997년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 2001년 6집 <희생>
- 사실 타이틀곡 '희생'보단 수록곡 '사랑했지만'이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6집 활동 이후에는 성대결절이 악화되고 대중성을 강조한 앨범이었던 7집은 대중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 김원준 - 1992년 1집 <모두 잠든 후에> ~ 1994년 3집 <너 없는 동안>
- 기존 타이틀곡인 '짦은 다짐'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타이틀곡을 바꾸었으며 이후 그는 점차 하향세를 탄다.
- 김건모 - 1993년 1집 <첫인상> ~ 1996년 4집 <스피드>(1차), 2001년 7집 <미안해요> ~ 2003년 8집 <청첩장>(2차)
- 1차: 2집 <핑계>는 KBS 가요대상, MBC 한국가요제전, SBS 가요대전 지상파 방송 3사 동시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대상마저 석권하면서 당시 5대 가요대상을 모두 석권한 유일왕이 되었고, 3집 <잘못된 만남>은 약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다 음반판매고를 기록했고 현재는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면서 이 기록은 사실상 넘을 수 없다.[13] 당시의 독보적인 인기에 힘입어 KBS 가요대상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2연패를 달성하였고 4집 <스피드>는 KBS 가요대상 대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3연패와 MBC 한국가요제전에서 2년만에 대상을 수상, KMTV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물론 1998~2003년까지도 음악프로그램 1위는 여러번 차지했으나 선술한 당시에 비해서는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
- 2차: 제2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시기로, 7집은 143만장을 판매하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것과 동시에 2001년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8집은 음반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53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3년 전체음반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 신성우 - 1993년 1집 <내일을 향해> ~ 1994년 3집 <서시>
- 김동률 - 2000년 2집 <희망> ~ 2001년 3집 <귀향>, 2008년 5집
- 서지원 - 1996년 2집 <내 눈물 모아>
- 유작이라 전성기로 규정 짓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곡을 통해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서지원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앨범인 점을 고려하여 본 문서에 기재.
- 성진우 - 1995년 1집 <포기하지마>
- 유정석 - 질풍가도 시절
- 조관우 - 1995년 2집 <님은 먼곳에>[14]
- 김정민 - 1995년 2집 <슬픈 언약식> ~ 1996년 3집 <애인>
- 임창정 - 1997년 3집 <그때 또 다시> ~ 2002년 9집 <슬픈 혼잣말>(1차), 2015년 미니앨범 <또 다시 사랑> ~ 2016년 13집 <내가 저지른 사랑>(2차)
- 1차: 해당 년도 및 앨범 활동 기간 동안 음악방송과 시상식을 통한 대외적인 성과를 꾸준히 기록했으며 시야를 좀 더 넓히자면 <그때 또 다시>와 <결혼해줘>를 통해 가요톱10에서의 마지막 단일 앨범 2회 연속 골든컵 수상 및 H.O.T.와 젝스키스가 양분했던 동년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3집과, 약 60만장의 판매고와 6개월 간의 음반 활동을 통해 3집 다음으로 높은 체감인기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6집 당시가 가장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 2차: 데뷔 20년차에 접어든 시기의 음악 방송 1위 기록은 물론 2016년을 빛낸 갤럽서치 1위 선정 등의 대외적인 성과와 체감 인기를 통해 이와 같이 구분했으며 이후 발표된 미니앨범 2집 <그 사람을 아나요>와 14집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도 꾸준히 음원 차트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체감 인기는 해당 시기에 비해서는 못 미친다.
- 김장훈 - 1998년 4집 <나와 같다면> ~ 2000년 6집 <혼잣말>
- 2001년 이후에도 꾸준히 음반을 내기는 했으나 흥행을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기부천사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후 SNS에서 논란을 많이 일으켜서 이미지가 많이 추락했고 목 상태도 매우 불안정해졌다. 그래도 최근에는 본인에 대한 조롱에서 시작된 숲튽훈이라는 이미지로 방송에 복귀해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고 예전 일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이미지가 회복되는 추세다.
- 조PD - 2004년 5집 <친구여>
- 유승준 - 1997년 1집 <가위> ~ 2000년 4집 <비전>
- 이후 발표된 5집과 6집 역시 꾸준히 대외적인 성과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앨범의 대중적 히트보다는 팬덤 화력으로 기록한 성과인 측면이 강하며 대부분 알고 있듯이 6집 활동 이듬해 터진 병역기피 사건으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
- 이기찬 - 2001년 <또 한번 사랑은 가고> ~ 2002년 <감기>
- 안재욱 - 1997년 1집
, 2003년 4집 <친구> - 4집 <친구> 이후로는 배우로 많이 활동 중이다.
- 최진영 - 1999년 1집 <영원>
- 홍경민 - 2000년 3집 <흔들린 우정> ~ 2001년 4집 <가져가>
- 해당 시기 이후 가수로서의 전성기가 끝났지만 그 이후에는 각종 예능과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 박효신 - 2002년 3집 <좋은 사람> ~ 2004년 4집 <그곳에 서서>, 2014년 디지털 싱글 앨범 <야생화>
- 조성모 - 1998년 1집
~ 2000년 3집 <아시나요>(1차), 2003년 5집 <피아노>(2차) - 1999년과 2000년은 그야말로 그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최전성기로 구분된다. 1999년에는 2집
한 장의 앨범으로 1999년 당시 음반판매순위 1위를 석권함은 물론 동년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핑클과 공동수상) 대상을 석권했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발표된 2.5집 <가시나무>와 3집 <아시나요> 역시 동년 음반판매순위 1, 2위를 석권하면서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대상,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을 석권했다. 당시 그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리즈 시절을 지낸 핑클, god와 방송사별 대상을 양분했을 정도. 5집 피아노 때는 2003년 전체음반판매량 5위권 안에 랭크되었고, 동년 골든디스크 대상도 석권했다. 하지만 피아노 이후부터는 당시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4, 6집도 당시 음반 판매량이나 커리어를 보면 준수한 성적이나 이 전성기만큼은 미치지 못했다.
- 1999년과 2000년은 그야말로 그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최전성기로 구분된다. 1999년에는 2집
- 싸이 - 2001년 1집 <새>, 2002년 3집 <챔피언>, 2012년 6집 <강남스타일>
- 데뷔 초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2집 활동 중 대마초와 병역 비리 등으로 잠시간 공백기를 가져왔기에 별도 구분한다.
- 차태현 - 2001년 1집
- 휘성 - 1집 <안 되나요> ~ 5집 <사랑은 맛있다>
- SE7EN - 2003년 1집 <와줘> ~ 2006년 4집 <라라라>
- 이후 미국에서 활동을 해 보려 했으나 실패한 뒤로는 과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급기야 2013년에는 연예병사로 입대해 근무를 태만하게 해서 연예병사를 폐지시킨 주 범인이 되었고, 현재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지만 비난 여론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 김형중 - 2001년 토이 5집, 2003년 1집 <그랬나봐> ~ 2004년 2집 <그녀가 웃잖아>
- 김범수 - 2004년 천국의 계단 OST <보고싶다>[15] ,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16]
- 윤도현 - 2005년 <사랑했나봐>
- 박상철 - 2006년 3집 <무조건> ~ 2007년 4집 <황진이>[17]
- 성시경 - 2002년 2집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 2006년 4집 <거리에서>
- 김종국 - 2004년 2집 <한 남자> ~ 2008년 5집 <어제보다 오늘 더>
- 2004년에 발표한 한 남자와 중독의 인기, 그리고 동시에 X맨을 찾아라와 같은 인기 에능 프로그램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벌였고, 2005년에는 제자리 걸음, 사랑스러워,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이 지난 해보다 발표한 노래들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고, 동시에 여전히 X맨을 찾아라, 날아라 슛돌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2005년 연말 지상파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싹쓸이하는 마지막 수상자가 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군입대 전 낸 4집과 소집해제 후 낸 5집이 2, 3집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고 공익근무 논란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후 발표한 노래들은 2집과 3집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5집 어제보다 오늘 더로 남자 솔로 발라드 가수로서 비나 원더걸스와 함께 활동했음에도 지상파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은 저 슬럼프를 잘 극복했으며 가수보다는 예능인으로 활동 중이다.
- 비 - 2003년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 ~ 2008년 5집
- 테이 - 2004년 1집 <사랑은...향기를 남기고> ~ 2007년 4집 <같은 베게>
- 정규 1집 타이틀곡 <사랑은...향기를 남기고> 활동은 그 해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그 당시 받을수 있는 최대 1위 횟수를 모두 기록하면서 거의 독주 체재를 형성했고[18] 이 곡의 높은 인기를 통해 2004년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정규 2집 타이틀곡 <사랑은...하나다> 활동도 여전히 많은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였고[19] , 후속곡 <그리움을 사랑한 가시나무>도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1위를 기록하였다.[20] 무엇보다 2집 활동 시기에는 가수 활동 외에 예능계에서도 각종 게스트로 많은 활약을 보여주고[21] 이를 통해 2005년 SBS 가요대전 본상까지 수상한다. 그 뒤 같은 해 11월에 발표된 정규 3집 <그리움을 외치다>는 1집과 2집보다는 반응이 약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고[22] , 2007년에 발표한 정규 4집 <같은 베게>는 비록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중적인 반응은 과거의 타이틀곡 못지 않게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2008년에 발표한 정규 5집 <기적 같은 이야기>부터는 대중적인 반응도 높게 받지 못하게 되면서 이전곡들만큼이나 큰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 이승기 - 2004년 1집 <내 여자라니까> ~ 2011년 5집 <친구잖아>
- MC몽 - 2005년 2집 <천하무적> ~ 2008년 4집 <서커스>
- 그 뒤 2010년에 MC몽 병역비리 사건이 일어나서 방송에서 퇴출되었다.
- 박현빈 - 2006년 1집 <곤드레 만드레> ~ 2008년 3집 <샤방샤방>
- 케이윌 - 2009년 EP <눈물이 뚝뚝> ~ 2013년 EP <촌스럽게 왜 이래>
- 아웃사이더 - 2009년 2집
- 박완규 - 부활 시절 ~ 솔로앨범 1집
- 천년의 사랑이 수록된 그 앨범이다. 이후로도 솔로 활동을 계속하나 반응은 무미건조했고 앨범 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 로이킴 - 2012년 <슈퍼스타K4> 우승 ~ 2013년 싱글 <봄봄봄>, 정규 1집
, 2018년 싱글 <그때 헤어지면 돼>, <우리 그만하자> - 2019년에 본인이 자신의 절친인 정준영이 주도한 정준영 등 도촬 및 음란물 유포 사건의 한 주축 멤버로 밝혀지면서 이미지가 매우 나빠져 버려 앞으로는 저 시기들만큼의 인기나 흥행을 기록하기에는 어려워졌다.[23]
4.2. 여자 솔로
- 현미 - 1962년 <밤안개> ~ 1967년 <몽땅 내사랑>
- 이미자 - 1964년 <동백아가씨> ~ 1970년 <아씨>
- 명곡이 무척 많으나 동백아가씨의 히트 이후 한일수교 정상화로 인한 정치적 영향을 받아, 왜색풍이라는 시비에 의해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해금될 때까지 방송에서 접할 수 없었다.
- 패티김 - 1969년 <서울의 찬가> ~ 1971년 해외 진출
- 하춘화 - 1960년대 ~ 1980년대 전체[24] , 1990년 <날 버린 남자>
- 김수희 - 1983년 <멍에>, 1986년 <남행열차> ~ 1991년 <애모>
- 실제로는 1993년에 애모가 역주행으로 여러번 1위를 했기 때문에 그 때가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 혜은이 - 1975년 1집 <당신은 모르실거야> ~ 1979년 7집 <제3한강교>
- 김국진의 회고에 따르면 오늘날의 아이유를 능가하는 인기였다고 한다.
- 장덕 - 1986년 4집 <님 떠난 후>
- 심수봉 -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1989년 <미워요>
- 정수라 - 1983년 3집 <아! 대한민국> ~ 1988년 6집 <환희>
- 민해경 - 1990년 10집 <보고 싶은 얼굴>[25]
- 주현미 - 1988년 <신사동 그 사람> ~ 1990년 <잠깐만>
- 노사연 - 1989년 2집 <만남>
- 발매년도는 1989년이지만 노사연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한 1991년에 비로소 인기를 얻었다.
- 이선희 - 1984년 강변가요제 <J에게>[26] ~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
- 해당 시기가 이선희의 커리어 전반에서 최고 전성기임은 분명하나, 그 이후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한 세대가 흐른 2010년대에도 큰 굴곡없이 활발히 활동을 계속하며 한국 가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초반은 각종 유명 음악방송 출연과 2010년 OST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2014년에 발매한 15집 타이틀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대히트로 한 세대를 건너 찾아온 또 다른 전성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 최연제 - 1993년 2집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 신효범 - 1993년 3집 <언제나 그 자리에> ~ 1994년 4집 <난 널 사랑해>
- 박미경 - 1994년 2집 <이유 같지 않은 이유> ~ 1995년 3집 <이브의 경고>
- 김완선 - 1986년 1집 <오늘밤> ~ 1987년 2집 <나홀로 뜰앞에서>, 1990년 5집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27]
- 이지연 - 1987년 1집 <난 아직 사랑을 몰라> ~ 1989년 2집 <바람아 멈추어 다오>[28]
- 이상은 - 1988년 강변가요제 <담다디> ~ 1990년 2집 <사랑할거야>
- 양수경 - 1989년 2집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29] ~ 1990년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
- 강수지 - 1990년 1집 <보라빛 향기> ~ 1992년 3집 <시간 속의 향기>
- 하수빈 - 1992년 1집 <노노노노노> ~ 1993년 2집 <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 인순이 - 희자매와 리듬터치 시절, 2004년 조PD 피처링 <친구여>
- 김혜연 - 1994년 3집 <서울 대전 대구 부산>, 2008년 12집 <참아주세요>
- 1박 2일에서 "뱀이다~" 라는 가사가 있는 기상송으로 매우 유명했다. 1주년 기념 충북 영동 여행에서는 새벽에 직접 촬영현장에 찾아와 라이브로 기상송을 들려주었다.
- 엄정화 - 1997년 3집 <배반의 장미>[30] ~ 1999년 5집 <몰라>
- 이소라 - 1995년 1집 <난 행복해> ~ 1996년 2집 <기억해줘>, 2000년 4집 <꽃>,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 ~ 2012년
- 김자옥 - 1996년 1집 <공주는 외로워>
- 원래 배우로 태진아의 권유로 이벤트성으로 가요계에 입문했는데, 당시 예능에서 보여준 공주병 컨셉이 먹혀들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 소찬휘 - 1997년 2집 <현명한 선택>, 2000년 4집
- 양파 - 1997년 1집 <애송이의 사랑> ~ 1999년 3집
, 2007년 5집 <사랑... 그게 뭔데> - 박지윤 - 1997년 1집 <하늘색 꿈> ~ 1998년 2집
- 2000년 4집 <성인식>도 당시 체감 인기로만 구분하자면 전성기 시절로 구분할 수 있지만 본인과 팬들 입장에서는 흑역사 취급당한다.
- 김현정 - 1998년 1집 <그녀와의 이별> ~ 2002년 5집 <단칼>
- '그녀와의 이별'은 1997년에 발매된 곡으로 당시에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1998년에 다시 인기를 끄는 역주행 곡이 되었다.
- 박정현 - 1999년 2집 <편지할께요>[31] ~ 2002년 4집 <꿈에>,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32]
- 이정현 - 1999년 1집 <와> ~ 2000년 2집 <너>
- 이수영 - 2001년 3집 <그리고 사랑해> ~ 2006년 7집
- 장나라 - 2001년 1집 <고백> ~ 2003년 3집 <나도 여자랍니다>
- 특히 2002년 10월 발표한 2집
은 4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당시 오리콘 차트 히트로 상승세였던 보아를 꺾고 KBS 가요대상 대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 가수상,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정규 3집 역시 히트를 쳤으나 그 이후에는 중국 활동에 매진했던 탓에 한국 활동이 뜸해지면서 자연스레 쇠퇴기를 맞았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가수 활동을 재개했지만 전성기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 특히 2002년 10월 발표한 2집
- 백지영 - 2000년 2집
, 2006년 5집 <사랑 안 해> ~ 2009년 아이리스 OST <잊지말아요> - 2집 앨범 활동 종료를 앞두고 터진 섹스 비디오 스캔들로 인해 인기가 급추락했으나 다행히 2006년 5집부터 다시 전성기를 찾았다.
- J.ae - 2000년 2집 <어제처럼>
- BoA - 2002년 2집 <No.1> ~ 2004년 4집
- 왁스 - 2001년 2집 <화장을 고치고> ~ 2002년 3집 <부탁해요>
- 이효리 - 2003년 1집 <10 Minutes>, 2008년 3집
- 장윤정 - 2004년 1집 <어머나> ~ 2005년 2집 <짠짜라>
- 아이비 - 2005년 1집
~ 2007년 2집 <유혹의 소나타> - 당시 골든디스크 디지털 음원 대상까지 수상하면서 인기 가수가 되었으나 곧 이어 전 남자친구와의 스캔들과 루머로 인해 한순간에 인기가 곤두박질쳤다.
- 윤하 - 2007년 1집 <비밀번호486>
- 2007년은 윤하의 최전성기로, 정규1집의 타이틀곡 비밀번호486이 대대적으로 히트했으며 같은 해에 나온 1.5집 <혜성>과 토이 6집의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까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연말에는 MKMF, 골든디스크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다만 이후에 발표한 음악들 중 <비밀번호486>을 넘어서는 반응을 얻은 적은 없으며, 음악방송에서도 2위는 여러 번 갔지만 1위까지는 하지 못 해 <비밀번호486>이 그녀의 유일한 음악방송 1위곡으로 남아있다. 특히 독립 소속사를 세운 2012년부터는 방송보다는 공연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하는 음악의 장르 자체도 메인스트림과는 거리가 있는 등 대중적인 인기와는 약간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서인영 - 2008년 미니 1집 <신데렐라>, 2010년 싱글 <사랑이라 쓰고 아픔이라 부른다>
- 손담비 - 2008년 미니 2집 <미쳤어> ~ 2009년 1집 <토요일 밤에>
- G.NA - 2010년 <꺼져줄게 잘 살아> ~ 2012년 <2HOT>
- 그 뒤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가, 2016년 연예인 원정 성매매 사건 때문에 방송 복귀가 힘들어졌다.
- 아이유 - 2010년 <좋은 날>[34] ~ 2012년 <하루 끝> , 2013년 <금요일에 만나요> ~ 현재진행형
- 2012년 연말 발생한 트위터 사건이 2010년 이후 전성기의 연속인 그녀의 커리어에서 사실상의 유일한 위기였다.
- 3집 리패키지 앨범에 수록한 자작곡 금요일에 만나요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뮤지션 취급을 받게 되었고, 이전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곡을 본인이 작사하고 앨범 프로듀싱을 직접 했다. 이후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대표곡: 너의 의미), <소격동>,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레옹>, <CHAT-SHIRE> 앨범(대표곡: 스물셋), <Palette> 앨범(대표곡: 밤편지, 팔레트), <삐삐>, <Love poem> 앨범(대표곡: Love poem, Blueming) 등 발매한 모든 음반에서 음악방송 1위와 음원차트 줄세우기 및 장기집권을 하며 각종 수상을 휩쓸고 대한민국 여자 솔로 가수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2019년 호텔 델루나 이후 현재진행형이다.[33]
- 현아 - 2011년
~ 2012년 - 그 후의 포미닛 활동 및 그룹 해체 후 솔로 활동 성과도 나쁘진 않지만 2011~2012년의 폭발적 인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 에일리 - 2012년 <보여줄게> ~ 2014년 <손 대지 마>, 2017년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35]
- 이하이 - 2012년 <1, 2, 3, 4> , 2016년 <한숨>
- 헤이즈 - 2017년 <비도 오고 그래서>
- 청하 - 2017년
~ 현재진행형 - 수지 - 2017년
[36] -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2012년 건축학개론 시기이다.
- 송가인 - 2019년 미스트롯 ~ 현재진행형
4.3. 일반 댄스, 발라드 및 록 그룹
- 송골매 - 1982년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 ~ 1983년 3집 <한줄기 빛>
- 강병철과 삼태기 - 1982년 <삼태기메들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시나위 - 1986년 1집 <크게 라디오를 켜고> ~ 1987년 2집 <새가 되어 가리>(1차), 1996년 5.5집 <써커스> ~ 1998년 7집 <희망가>(2차)
- 소방차 - 1987년 1집 <어젯밤 이야기> ~ 1989년 3집 <사랑하고 싶어>
- 015B - 1992년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 ~ 1993년 4집 <신인류의 사랑>
- N.EX.T - 신해철,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멤버로 있던 3~4집 활동기.
- 서태지와 아이들 - 1992년 1집 <난 알아요> ~ 1996년 4집 <Come Back Home> (활동 기간 전체)
- 1992년 상반기가 신승훈의 전성기였다면 그 해 하반기는 이들의 최전성기로 신승훈에 이어서 한 앨범으로 가요톱텐에서 2곡의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데뷔 초임에도 장기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가요시상식 대상도 1992년에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석권했으며 1993년에도 SBS 가요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석권했다. 이후 1995년에도 MBC 가요대상 대상을 석권할 정도였다. 그 후로, 해체를 할 때까지 1990년대에서 최정상으로 군림했던 가수였다.
- 부활 - 1993년 3집 <사랑할수록>, 2002년 8집
- 더 블루[37] - 1992년 1집 <너만을 느끼며> ~ 1995년 2집 <친구를 위해>
- ZAM - 1993년 1집 <난 멈추지 않는다>
- 노이즈 - 1993년 1집 <너에게 원한 건>, 1995년 3집 <상상속의 너>
- 듀스 - 1994년 2집 <우리는> ~ 1995년 3집 <굴레를 벗어나>
- 솔리드 - 1995년 2집 <이 밤의 끝을 잡고> ~ 1996년 3집 <천생연분>
- 마로니에 - 1994년 3집 <칵테일 사랑>: 원곡 가수는 마로니에 3집의 객원보컬인 신윤미, 최선원, 김신우다. 방송 활동을 했던 그룹 '마로니에'의 립싱크 사건 이후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 투투 - 1994년 1집 <일과 이분의 일>
- 룰라 - 1994년 1집 <비밀은 없어> ~ 1995년 2집 <날개 잃은 천사>
- 1집 후속곡과 2집 타이틀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 해 혼성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이 앨범 후속으로 출시한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표절곡으로 걸려들면서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뒤 4집 <3! 4!>부터 6집 <기도>까지 1위 곡을 배출하면서 재기했지만 전성기 당시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 전람회 - 1994년 1집 <기억의 습작> ~ 1996년 2집 <취중진담>, 2012년 건축학개론 OST <기억의 습작>
- DJ DOC - 1995년 2집 <머피의 법칙> ~ 1997년 4집
, 2000년 5집 : 4집과 5집 사이의 공백기는 흑역사에 가깝기 때문에 구분했다. - 녹색지대 - 1994년 1집 <사랑을 할거야> ~ 1995년 2집 <준비없는 이별>: 표절 논란 이후부터 하향세를 탔다.
- R.ef - 1995년 1집 <고요속의 외침> ~ 1996년 2집 <찬란한 사랑>: 다만 1집 활동곡인 <고요속의 외침>과 <상심>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흑역사가 있다.
- 육각수 - 1995년 강변가요제 <흥보가 기가막혀>: 가요제 수상곡 하나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과 1위 후보로 대결할 정도였으며, 정규앨범 수록곡인 <다시>와 <명동별곡>도 상위권에 랭크하면서 선전했다.
- 에코 - 1997년 2집 <행복한 나를>
- 패닉 - 1995년 1집 <달팽이>
- 쿨 - 1996년 3집 <운명> ~ 1998년 4집 <애상>, 2002년 7집 <진실> ~ 2003년 8집 <결혼을 할거라면>
- 3, 4집은 쿨의 최전성기 시절로 불리는 시기다. 3집 앨범은 비공식적으로 10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밀리언셀러 가수가 되었고, 이 시기에는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 4집 이후 4.5집 <미절>부터 2001년 발매한 6집까지는 전성기 때의 인기만큼은 누리지 못했으나 2002년 7월 발표한 정규 7집 앨범 <진실> 이 큰 인기를 얻으며 총 647,052장이 팔리며 2002년 전체 음반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해 발매된 7.5집 역시 3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2002년 한 해동안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멤버들의 불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같이 찍던 앨범 자켓을 따로 찍기 시작했으며, 대놓고 코믹적인 이미지로 가기 시작했다. 다만 인기가 바로 떨어지지는 않았고, 2003년 7월 발매한 8집 <결혼을 할거라면> 역시 나름대로 히트를 쳤다. 하지만 불화는 점점 심해지면서 다음 해 발표한 9집 때 방송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예능 활동에만 전전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의 여파 때문인지 선술한 <운명>, <슬퍼지려 하기 전에>, <애상>, <미절> 등은 콘서트에서 자주 부르는 편이나, <진실>은 히트곡임에도 전혀 부르지 않는다. <결혼을 할거라면>은 2008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부른 바 있으며, 그 뒤 2005년에 해체했다가 2008년에 재결합했지만 이전과 같은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
- 터보 -1995년 1집 <280km/h Speed> ~ 1998년 4집 <Perfect Love>
- 커리어로서는 전성기였지만 멤버들 전체가 소속사와 불화를 겪던 시기다. 2집때 김정남이 소속사의 전횡으로 탈퇴하고 3집 때 마이키(본명 조명익)를 영입해서 인기를 얻었지만 4집 활동 당시 김종국이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받는 바람에 출연 정지를 당해 1달 밖에 활동을 못했으나, 4집 앨범 수록곡 3곡이 총 1위를 달성했고[38][39] , 5집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 소속사의 횡포, 혹사, 갑질이 극에 달해 김종국이 탈퇴함으로서 2001년 해체수순을 밟았고 이후 개별활동으로 연명하다가 2015년에 3인조 체제로 재결성했다.
- 클론 - 1996년 1집 <쿵따리 샤바라> ~ 2000년 4집 <초련>: 4집 활동이 끝나고 몇 달 되지 않아 강원래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척수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아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기를 걷게 되었다.
- 영턱스클럽 - 1996년 1집 <정>
- 당시에는 데뷔 동기인 H.O.T.와 1위를 다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1집 활동이 끝난 후 핵심 멤버이자 리더인 임성은이 탈퇴하면서 서서히 인기가 하락했다. 그래도 2~4집까지는 활동곡들을 상위권에 랭크시키면서 선전했으나 잦은 멤버 교체로 인해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 자자 - 1997년 1집 <버스 안에서>[40]
- UP - 1997년 2집 <뿌요뿌요>
- 언타이틀 - 1997년 2집 <날개>
- 주주클럽 - 1996년 1집 <16/20>
- 업타운 - 1997년 1집 <다시 만나줘>
- 카니발 - 1997년 1집 <그땐 그랬지>
- 지누션 - 1997년 1집 <말해줘>
- 자우림 - 1997년
~ 2004년 <하하하송>, 2013년 <스물다섯, 스물하나> - 샵 - 1998년 2집 <가까이> ~ 2001년 4.5집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 4집 시기에는 커리어로서는 전성기였지만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었던 시기다. 2002년 9월 정규 5집 <눈물>을 발매하고 활동하다가 결국 4년간 쌓아온 불화가 폭발하면서 2002년 10월 15일에 해체되었다. 그로 인해 피해자였던 이지혜는 가요계를 은퇴하다시피 했다가 2005년에 복귀했고 서지영은 현재까지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얼마 뒤 화해해서 현재는 별 탈없이 지내고 있다.
- 스페이스 A - 1999년 2집 <성숙>: 이후 김현정이 탈퇴하고 그녀의 공석에 안유진이 투입되었지만 2집 당시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 Y2K - 1999년 1집 <헤어진 후에>
- 원타임 - 2000년 2집
, 2004년 4집 - 코요태 - 2000년 3집
~ 2004년 7집 <빙고> - 2000년 3집에서 첫 1위를 달성했고 2002년 발표한 정규 4집 <필립>의 타이틀 곡 <비몽>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52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하프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2002년 전체 음반판매량 4위를 차지했으며 또한 코요태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판매고를 기록했다. 그 다음 해 발표한 5집 <비상> 역시 히트했고 2004년 발표한 6집이 <디스코왕>, <불꽃>,
의 3연속 히트로 가요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1위를 차지했고, 가요대상 대상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올라갔다. 7집 활동 중인 2005년 1월에도 음악캠프와 쇼뮤직탱크에서 빙고라는 곡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실질적인 하락세는 8집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에게는 데뷔곡인 <순정>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 8집은 타이틀곡 <1, 2, 3, 4>가 너무 지나친 스타일 변화로 대중적인 인기가 많이 하락하게되었고, 가요프로그램에서의 1위도 단 한 개도 수상하지 못하거 음반 판매량도 겨우 73,176장으로 작년에 발표한 6집이 거의 30만장 정도 팔린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판매량 수치하락을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메인보컬이자 여성멤버였던 신지가 대내외적인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서 코요태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그 타격이 가버렸다. 또한 이 시기는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개인활동에 더욱 주력하기 시작한 시기다.
- 그래도 각종 연말가요시상식 본상은 받긴 하였지만. 그 다음해인 2006년에 발표한 9집은 타이틀곡 이 <1, 2, 3, 4>보다는 반응이 좋았지만 이미 전성기 시절에 비해서는 못미쳤고, 음반판매량은 34,383장으로 8집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버렸고, 매년 계속해서 받던 연말 가요 시상식 본상도 이 해에는 전혀 받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9집은 현재 코요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 9집 활동 기간은 소속사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된 시기여서 신지가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하는 등 솔로로 본격적으로 전향을 한 시기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7년 하반기에는 남자멤버이자 가장 인지도와 이미지가 좋았던 멤버 김종민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시작하게 되며 빠지게 되고 또 다른 남성멤버이자 래퍼 빽가는 본격적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 이후에도 코요태는 여러 앨범들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전성기시절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공백기간에 발표한 신지의 각종 솔로곡 활동들에 대한 반응 및 성적도 부진했고, 빽가는 2009년 말에 뇌종양이 발견되는 큰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빽가 같은 경우에는 2010년 1월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2010년 연말즈음에 복귀했다.
- 그래도 남자멤버 중 한 명인 김종민 같은 경우에는 8집부터 이미 많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던 예능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고, 소집해제 이후에도 1박 2일 등 예능에서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며 KBS 연예대상 및 SBS 연예대상에서 각종 수상기록을 남겼고, 그 중 2011년 KBS 연예대상에서는 1박 2일 팀 공동대상을 수상했고, 2016년 KBS 연예대상에서는 단독 대상을 수상하고,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김건모 에피소드에서 자주 출연하며 오히려 멀티 엔터테이너 및 예능인으로서는 그 이전보다도 더욱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 2000년 3집에서 첫 1위를 달성했고 2002년 발표한 정규 4집 <필립>의 타이틀 곡 <비몽>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52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하프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2002년 전체 음반판매량 4위를 차지했으며 또한 코요태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판매고를 기록했다. 그 다음 해 발표한 5집 <비상> 역시 히트했고 2004년 발표한 6집이 <디스코왕>, <불꽃>,
- 캔 - 2002년 3집 <내 생에 봄날은>
- 컨츄리꼬꼬 - 1999년 2집
~ 2000년 3집 <오, 가니> - 노바소닉 - 2000년 2집
- 이브 - 2000년 3집 <너에게로 날자> ~ 2001년 4집
- 드렁큰타이거 - 2001년 3집
- CB Mass - 2001년 2집 <휘파람>
- M.C The Max - 2003년 1집 <잠시만 안녕> ~ 2004년 2집 <사랑의 시>
- 브라운 아이즈 - 2001년 1집 <벌써 일 년>~ 2002년 2집 <점점>: 벌써 일 년은 방송활동 한번 없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했고, 2집의 경우 7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음반시장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 브라운 아이드 소울 - 2003년 1집 <정말 사랑했을까>
- 에픽하이 - 2005년 3집
~ 2008년 5집 - SG워너비 - 2005년 2집 <살다가> ~ 2007년 4집 <아리랑>
- 2005년에는 정규 2집으로 그 해 최다 판매량을 달성해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정규 3집으로 그 해 총 판매량 2위를 달성했고 음원은 1위를 달성하면서 MKMF 올해의 앨범상, 노래상, 골든디스크 디지털음원 대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는 2집과 3집보다는 인기가 덜했지만 그래도 그 해 판매량 1위를 달성하면서 다시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2008년 5집 <라라라>부터는 이전만큼의 음반과 음원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고, 채동하가 탈퇴한 이후 2008년부터 현재까지도 전성기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 버즈 - 2005년 2집[41] ~ 2006년 3집 <남자를 몰라>
- 클래지콰이 - 2004년 1집
[42] ~ 2007년 3집 - 거북이 - 2004년 3집 <빙고> ~ 2006년 4집 <비행기>
- 리쌍 - 2005년 3집 <내가 웃는 게 아니야> ~ 2007년 4집 <발레리노>, 2009년 6집 <우리 지금 만나>
- 다이나믹 듀오 - 2005년 2집
~ 2007년 3집 <출첵> - 씨야 - 2006년 1집 <여인의 향기> ~ 2007년 2집 <사랑의 인사>
- 게이트 플라워즈 - 데뷔 때부터 해체 직전까지 즉, 활동기간 전체
- 다비치 - 2008년 데뷔 1집 <미워도 사랑하니까> ~ 2011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2013년 정규 2집 <거북이>, 2015년 <또 운다 또> ~ 2016년 태양의 후예 OST <이 사랑>
- 미워도 사랑하니까를 시작으로 슬픈 다짐, 사랑과 전쟁, 8282, 시간아 멈춰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까지 대히트를 쳤다. 특히 Davichi in wonderland앨범에선 8282, My man, 사고쳤어요가 모두 차트 상위권에 올라갔으며 8282는 당시 메가 히트곡인 소녀시대의 Gee 곡을 꺾고 1위에 올라갔으며 사고쳤어요 곡은 8282 곡과 함께 1위 후보에 올라가기도 했다.
- 국카스텐 -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복면가왕 9연승 기간 ~ 현재진행형
- 버스커버스커 - 2012년 1집 ~ 2013년 2집
4.4. 아이돌 그룹
- H.O.T. - 1996년 1집 <전사의 후예> ~ 1999년 4집 <아이야!>
- 특히 1997년과 1998년은 그룹 전체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시기이다. 1997년은 <행복>과
가 수록된 2집이 152만장을 기록하며 그 해 음반판매량 연간 1위를 달성하고 거기에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KMTV 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한다. 1998년은 <빛>이 수록된 3집 활동을 통해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을 모두 석권하며 1994년의 김건모에 이어 두 번째로 지상파 방송 3사 대상을 모두 석권하는 팀이 된다. 또한 이 해 서울가요대상과 KMTV 가요대전 대상도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된다. (1998년의 서울가요대상 대상은 젝스키스와 공동으로 수상했다.) - 1999년에 선보인 4집 활동은 대상을 수상한 것이 아직 뮤직비디오 위주의 시상식이었던 1999 엠넷 영상음악대전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한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음악적으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앨범 판매량도 1,383.985장으로 2집 다음으로 가장 높은 단일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 2000년에 낸 5집
도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지만 전작들만큼의 반응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으며 그 뒤 1년도 안 돼 H.O.T.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 특히 1997년과 1998년은 그룹 전체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시기이다. 1997년은 <행복>과
- 젝스키스 - 1997년 1집 <학원별곡> ~ 1999년 4집
- 이듬해 드림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으며 사실상 해체 이전의 활동기간 자체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 태사자 - 1997년 1집 <도> ~ 1998년 2집 <애심>
- S.E.S. - 1997년 1집 ~ 2000년 4집 <감싸 안으며>
- 핑클 - 1998년 1집 <내 남자친구에게> ~ 2000년 3집
- 베이비복스 - 1998년 2집 <Baby V.O.X II> ~ 2002년 Baby V.O.X Special Album <우연>
- 국내 활동과 해외에서의 인기까지 감안하면 2004년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43]
- god - 1999년 2집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 2005년 6집 <보통날>
- 2002년에 그 유명한 100회 콘서트를 했으며 실질적인 전성기의 마지막은 윤계상의 탈퇴 이전이다. 특히 2000년과 2001년은 그룹 전체의 가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시기이다. 2000년은 최대 히트곡 <거짓말>이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3집이 2000년 한 해 동안 1,505,162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해 음반판매량 3위를 기록했고 이런 성과를 토대로 KBS 가요대상에서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면서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모조리 석권한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다.
- 3집은 다음 해인 2001년 상반기까지의 판매량까지 합하면 무려 1,805,162장을 기록하면서 그룹 전체와 1세대 아이돌 전체를 통틀어 최다 단일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하게 된다. 2001년에는 <길>이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4집이 2001년 한 해 동안 1,588,215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해 음반판매량 2위를 기록했고 이런 성과가 바탕이 되어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상, SBS 가요대상을 모두 석권하며 1994년의 김건모, 1998년의 H.O.T.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파 방송 3사 대상을 모두 석권하는 팀이 된다. 그 외에도 골든디스크 대상, 엠넷 뮤직비디도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한다. 거기에 4집도 다음 해인 2002년 상반기까지의 판매량까지 합하면 무려 1,748,215을 기록하며 1세대 아이돌 단일 앨범 판매량 2위를 기록하게 된다.
- 디바 - 1998년 2집 <왜 불러>
- 클레오 - 1999년 1집
~ 2000년 2집 <모순> - 클릭비 - 2001년 3집 <백전무패>
- 샤크라 - 2000년 1집 <한> ~ 이니가 탈퇴하기 직전
- UN - 2001년 2집 <파도> ~ 2002년 3집
-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2002년 3집
~ 2003년 4집 , 2006년 6집 <남자답게> - 5집 <중력> 같은 경우에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거의 끝나기 전에 발매된 앨범이어서 그 전보다도 소속사의 푸쉬 및 홍보가 굉장히 적어서 음반판매량 및 1위 기록은 3집과 4집에 비해 굉장히 적은 편이었다. 단, 퀄리티는 굉장히 좋다는 평가가 많았고 무엇보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대중에게 완전히 실력파 가수로 인정받게 된 것도 있어서 마냥 안 좋은 기억만 있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편이다.
- 드라마 패션 70's OST에 쓰인 <가슴 아파도>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6집의 타이틀곡 <남자답게>와 <피>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각종 가요프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브라이언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환희의 드라마 출연 등 멤버들의 개인활동도 이 때부터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발매된 7집부터 발표한 곡들은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 슈가 - 2003년 2집
- NRG - 2003년 5집
~ 2004년 6집 <대한건아 만세> - 신화 - 1999년 2집
~ 2004년 7집 - 쥬얼리 - 2005년 4집
, 2008년 5집 - 동방신기 - 2005년 2집 <Rising Sun> ~ 2008년(Purple Line, 주문-MIROTIC)
- 2005년에는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면서 더 많은 팬덤을 확보하면서 MKMF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에는 정규 3집이 음반판매량 1위를 달성하고 연말에는 MKMF 올해의 가수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SBS 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연말 시상식 대상을 SG워너비와 양분했다. 2008년에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이 모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홍백가합전에 출전하고 국내 정규 4집 음반이 2003년 이후 최다인 50만장을 기록하면서 2008년 MKMF 올해의 앨범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음반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일본 양 국가에서 승승장구했었다. 하지만 2009년 김준수, 박유천, 김재중이 동방신기를 탈퇴하여 JYJ를 결성함으로서 전성기는 막을 내렸고, 2019년에는 박유천이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연예계에서 퇴출됨에 따라, 동방신기 5인 재결성의 가능성도 없어진 상황이다.[44]
- SS501 - 2005년 싱글 1집 <경고> ~ 2010년 미니 3집
- 김현중 - 우리 결혼했어요 ~ 꽃보다 남자
- 당시 김현중은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류스타로 발돋움했고 한국에서의 인기도 정점에 도달했으나 이후엔 그가 주연 배우로 출연했던 드라마들과 고정 패널로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부진했고 2016년에는 비록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여자친구 폭행혐의에 휘말리게 되면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음주운전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좋은 이미지를 회복하기에는 어려워졌다. 결국 이 두 사건들로 인해 이제 저 당시의 인기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 허영생, 김규종, 김형준 - 2008년 스페셜 앨범 <U R Man> ~ 2009년 꽃보다 남자 OST 내 머리가 나빠서
- U R Man으로 유닛 최초로 1위도 했고 꽃보다 남자가 대박을 치면서 내 머리가 나빠서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그룹사상 최고의 음원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다. 2016년부터 Double S 301이라는 유닛으로 활동 중이지만 당시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 김현중 - 우리 결혼했어요 ~ 꽃보다 남자
- FT아일랜드 - 2007년 데뷔
- 원더걸스 - 2007년 정규 1집 <Tell Me> ~ 2008년 싱글
[47] - 유빈 - 2008년 So Hot[45] , 2015년 I Feel You[46]
- 브라운 아이드 걸스 - 2008년
~ 2009년 3집 <Abracadabra>, <Sign> - 가인 - Abracadabra ~ 우리 결혼했어요 아담 커플
- 나르샤 - 2009년 11월 ~ 2010년 12월
- 2PM - 2009년
-
으로 짐승돌로 부상했고, 후속곡인 <니가 밉다>까지 히트했으며 2009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가수상까지 수상하며 시상식 대상마저 석권한 당시에는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하여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후 재범 탈퇴 후 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사실상 이후 국내에서는 당시만큼의 흥행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며 쇠퇴기를 걷게 되었다. 반면 박재범은 탈퇴 후 솔로 데뷔에 성공하면서 AOMG 및 하이어 뮤직을 창립하는 등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 박재범은 2PM과는 반대로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즉, 초창기 2PM 팬덤이 거의 박재범 쪽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개인 활동이 각 멤버들마다 잘 갖추어져 있기에 각 개개인의 자력으로 이 그룹은 현재까지도 해체없이 잘 유지되고 있고 각 멤버들의 개인적인 활동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인기에서는 오히려 2010년에 인기가 높았었다. 더 자세한 것은 2PM 문서 참조.
- 옥택연 - 2009년 <내 귀에 캔디> ~
[48]
-
- 2AM - 2010년
- 2010년 죽어도 못 보내와 정규 1집 활동으로 각종 가요프로그램 1위와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심지어는 골든디스크 시상식 디지털음원 부문 대상, 멜론 뮤직 어워드 베스트송상 등 굵직한 대상 등을 석권한 해였다. 하지만 이후 발표한 2AM의 노래들은 이 시기만큼 흥행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2015년을 기점으로 조권을 제외한 다른 세 멤버들이 JYP가 아닌 다른 소속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심지어 홀로 JYP에 남아있던 조권도 2017년 큐브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잠정적으로 팀 해체가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조권도 2018년 기준 경희대 석사 학위 특례 논란에 연루되었고 정진운은 2019년에 큰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이다.[49]
- 시크릿 - 2010년
~ 2011년 <별빛달빛> - 멤버 한선화를 비롯하여 개인적인 인지도를 쌓으면서 Magic을 통해 그룹 전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마돈나, 샤이보이, 별빛달빛 3연타로 인기 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가을에 나온 <사랑은 Move>부터는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얻는 것에 실패한 이후 2012년
은 한국에서 이전만큼의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2013년 까지는 어느 정도 선전했지만 이 시기 리더 전효성이 대내외적으로 여러 구설수에 오르면서 전효성 개인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어 이후 나온 노래들은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멤버들이 각자 개인활동에 주력했고 정하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탈퇴해서 사실상 해체라 봐도 무방하다.
- 멤버 한선화를 비롯하여 개인적인 인지도를 쌓으면서 Magic을 통해 그룹 전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마돈나, 샤이보이, 별빛달빛 3연타로 인기 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가을에 나온 <사랑은 Move>부터는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얻는 것에 실패한 이후 2012년
- miss A - 2010년
~ 2011년 - 카라 - 2008년 미니 2집 <Pretty Girl> ~ 2011년 정규 3집 <STEP>
- 포미닛 - 2009년
, 2013년 미니 4집 <이름이 뭐예요> - 2NE1 - 2009년 ~ 2012년 디지털 싱글
- 한때 기존 걸그룹과는 색다른 음악을 선보였으나 이후 2012년부터 가사면에서의 변화로 서서히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2012년에 발표한 는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도 몇 번하고 멜론 연간차트 6위, 엠넷닷컴 연간차트 4위를 차지하는 등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3년에 발표한
부터는 급격히 인기가 떨어져버렸고, 2014년에 발표한 2집으로 여전한 위엄을 선보였으나 동년 연말에 발생한 박봄 마약류 밀수 사건으로 인하여 국내에서의 팀 활동이 전면 중단되다가 2016년 공민지 탈퇴 후 팀은 결국 해체되었다.
- 한때 기존 걸그룹과는 색다른 음악을 선보였으나 이후 2012년부터 가사면에서의 변화로 서서히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2012년에 발표한 는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도 몇 번하고 멜론 연간차트 6위, 엠넷닷컴 연간차트 4위를 차지하는 등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3년에 발표한
- 티아라 - 2009년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 이전 - 이후 티아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급격히 나빠져 그 후에 발매된 음반은 별점 테러를 당하는 등 히트를 하지 못했다. 티아라 = 왕따돌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 상태였기에...[50]
- 레이디스 코드 - 2013년 <예뻐 예뻐>
- 크레용팝 - 2013년 <빠빠빠>
- 그 이후엔 계속 이상한 콘셉트를 밀고 가다가 대중에서 서서히 잊혀갔으며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 있다.
- f(x) - 2011년 <PINOCCHIO> ~ 2013년 <첫 사랑니>
- 씨스타 - 2012년 <나혼자> ~ 2015년
- 블락비 - 2013년
~ 2014년 - 2013년
을 통해 그룹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 및 가요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1위를 달성했고, 그 다음해 공개한 도 가요프로그램에서 세 번이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연말에는 멜론 뮤직 어워드와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에서도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후 발매한 블락비의 곡들은 이 때 만큼의 반응이나 인기를 얻지 못했다. 블락비의 메인 래퍼 지코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솔로로 활동하면서 멤버 개인으로서는 큰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소속사의 무관심과 멤버들의 군백기 시작으로 인해 현재는 14년만큼의 전성기에서 내려왔다.
- 2013년
- 인피니트 - 2011 ~ 2014년
- 걸스데이 - 2013년 <기대해> ~ 2014년
- 비스트 - 2011~2012년, 2014년
- 특히 2011년에는 대상에 해당하는 멜론 뮤직 어워드 아티스트상, KBS 가요대축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2013년에 발표한 정규2집
부터 그 이전곡들보다 반응이나 인기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2014년에 Good luck하고 12시 30분이 여러음악 방송에서 많은 1위를 차지해 인기를 좀 회복했다, 이후 2016년에는 장현승의 탈퇴 논란과 전 소속사인 큐브 엔터테인먼트와의 그룹명 상표권 문제가 연이어 터지면서 전성기시절 만큼의 인기를 회복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 2017년 탈퇴한 장현승을 제외한 5명이 2016년 말에 소속사를 어라운드어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후에 하이라이트로 팀명을 변경한후 선보인 첫곡 '아름답다'와 그 이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가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 특히 2011년에는 대상에 해당하는 멜론 뮤직 어워드 아티스트상, KBS 가요대축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2013년에 발표한 정규2집
- 슈퍼주니어 - 2009년 정규 3집 <Sorry, Sorry> ~ 2012년 정규 6집 <Sexy, Free & Single>
- 여느 아이돌과의 비교를 거부하던 넘사벽급 음반판매량과 동남아 및 서양권에서의 높은 팬층 확보를 통해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앨범 활동 기간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슈퍼주니어의 음악적 이미지 실추에 큰 영향을 끼친 곡들이 커리어적으로는 전성기 시절로 분류되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목으로 이후 슈퍼주니어는 SM엔터테인먼트 내에서의 위상을 EXO에게 물려주게 된다.
- 소녀시대 - 2009년 미니 1집 <Gee> ~ 2013년 정규 4집 <I GOT A BOY>
- 2009년에 발매된 <Gee>는 그 해 음악 방송과 시상식의 트로피들을 모조리 휩쓸며 엄청난 히트곡으로 남았으며, 2011년에 발매된 <The Boys> 또한 그 해에만 38만장을 팔아버리는 굉장한 팬덤 화력으로 걸그룹 중 유일무이하게 가온차트 앨범 연간 순위 1위를 거머쥐었다. <I GOT A BOY> 또한 온갖 차트를 휩쓸었고, 특히 ‘유튜브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유닛 활동까지 포함하면 2012년의 소녀시대-태티서
까지 포함될 수 있다. 당시 차트와 음악 방송 1위를 휩쓸며 성공적인 활동을 이루었다.
- 2009년에 발매된 <Gee>는 그 해 음악 방송과 시상식의 트로피들을 모조리 휩쓸며 엄청난 히트곡으로 남았으며, 2011년에 발매된 <The Boys> 또한 그 해에만 38만장을 팔아버리는 굉장한 팬덤 화력으로 걸그룹 중 유일무이하게 가온차트 앨범 연간 순위 1위를 거머쥐었다. <I GOT A BOY> 또한 온갖 차트를 휩쓸었고, 특히 ‘유튜브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유닛 활동까지 포함하면 2012년의 소녀시대-태티서
- 샤이니 - 2009년 <줄리엣> ~ 2015년
: 가요프로그램 1위 및 연도별로 발표한 앨범 타이틀곡이 멜론 연간 차트 100위권 내에 꾸준히 랭크되었던 기간을 기준으로 구분하였으며 2013년에는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생애 첫 대상을 석권한 시기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당시만큼의 음원 성적이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다. - EXID - 2014년 <위아래> ~ 2015년
- 이후에 나온 곡은 전작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 AOA - 2014년 <짧은치마>[51] ~ 2016년 역사 논란 발생 이전, 2019년 <날 보러 와요> ~ 2020년 AOA 지민 권민아 괴롭힘 논란 발생 직전
- 짧은치마 이후부터 상당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역사 논란이 발생하고 인기가 확 식어 버렸다. 그러다가 2019년 컴백전쟁: 퀸덤에 출연하면서 예전만큼의 인기에는 못 미치긴 해도 제 2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지민의 민아 괴롭힘 논란 이후 그룹이 존폐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 설현 - 2015년: 강남 1970(영화)을 시작으로 용감한 가족(예능), SK 텔레콤 CF, 오렌지 마말레이드(드라마), 한글날 홍보대사, 연말 시상식 MC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1년 안에 다 했지만 2016년 5월 역사 논란으로 인해 이제 저 당시의 인기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 Apink - 2013년
~ 2014년 , 2018년 <1도 없어>, 2020년 <덤더럼> -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컴백만 하면 음원차트 1위와 음악방송 1위을 차지했으며, 특히 LUV는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음반시장에서도 성공했다. LUV는 2014년 12월 한 달동안 모든 음악방송에서 정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Remember부터 부진하더니 그 뒤 5집
가 음악방송 1위를 할 때까지 음악방송, 음원차트 1위를 하지 못했다.
-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컴백만 하면 음원차트 1위와 음악방송 1위을 차지했으며, 특히 LUV는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음반시장에서도 성공했다. LUV는 2014년 12월 한 달동안 모든 음악방송에서 정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Remember부터 부진하더니 그 뒤 5집
- 모모랜드 - 2018년 <뿜뿜> ~ <BAAM>
- I.O.I - 사실상의 활동기간 전체.
- 레드벨벳 - 2016년 <러시안 룰렛> ~ 2018년
, 2019년 ~ - 여자친구 - 2015년 <유리구슬> ~ 2016년 <너 그리고 나>, 2018년 <밤>
- 2017년
이 다소 아쉬운 성과를 거두면서 침체했다가, 2018년 <밤>의 역주행으로 다시 인기를 구가했지만 차기작인 <여름여름해>가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그 이후에는 잇다른 MD 논란으로 팬들과 소속사 간 불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음악방송을 제외하곤 TV 출연이 뜸해진 편이다.
- 2017년
- 오마이걸 - 2018년 <비밀정원> ~ 현재진행형
- WINNER - 2014년 <공허해>, 2017년
~ 2018년 - EXO - 2013년 <으르렁> ~ 2018년
- iKON - 2015년 <취향저격>, 2018년 <사랑을 했다>
- IZ*ONE - 2020년
~ 현재진행형 - '라비앙로즈'와 '비올레타'는 음반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음원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의혹으로 그룹의 존폐 위기가 있었으나 사건이 잘 마무리되며 나온 'FIESTA'가 걸그룹 음반 초동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음원 성적도 최상위권에 랭크되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 방탄소년단 - 2015년 ~ 현재진행형
- TWICE- 2015년
~현재진행형 - BLACKPINK - 2016년 <휘파람> ~ 현재진행형
- BIGBANG - 2007년 ~ 2009년, 2012년 ~ 2016년 3집 정규 앨범 MADE
- BIGBANG은 2011년에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iTunes 종합 Chart 10위 안에 들었으며 2011년 11월 7일에 대한민국 최초로 MTV 유럽 뮤직 어워드(Europe Music Awards, EMA)에서 Worldwide Act 상을 수상하였다. 뱅뱅뱅 (BANG BANG BANG) 곡은 대한민국 Boy Band(보이그룹)에서 최초로 연간 순위 1위를 기록, 대한민국 최초로 1억 스트리밍을 기록하였다. 2017년 12월 31일 Last Dance Tour를 마무리하면서 BIGBANG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하였다. 이후에 과거 T.O.P의 대마초 흡연, 전 멤버였었던 승리의 버닝썬 관련 사건으로 이미지가 안 좋았었던 시절이 있었다.
5. 음반기획사/레이블
5.1. 대한민국
- 동아기획 - 1984년(김현식 2집) ~ 1992년(봄여름가을겨울 3집)
- 라인기획 - 1991년(신승훈 1집) ~ 1996년(클론 1집)
- SM엔터테인먼트 - 1996년 9월 ~ 2000년, 2004년 ~ 2010년, 2013년 ~ 현재
- 2011, 2012년에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를 통한 나쁘지 않은 시기를 계속 누리고 있기는 했었다. 2013년부터 EXO가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 중이며 2014년에 데뷔한 레드벨벳도 승승장구하면서 2013년에 재기한 뒤, 2017년부터 전성기에 가까운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YG엔터테인먼트 - 2007년 ~ 2010년(1차), 2012년 ~ 2017년(2차)
- 이 시기에는 빅뱅의 거짓말~붉은노을 연속 히트에 지드래곤과 태양의 솔로 앨범 성공 그리고 투애니원의 히트까지 뭘 해도 잘나가는 시기였다.
- 2011년에는 빅뱅이 컴백했으나 예전에 비해 음원이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G-DRAGON의 대마초 사건과 대성의 교통사고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다. 그나마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가 히트 하면서 체면치레했다.
- 2012년에 빅뱅이 컴백을 해서 나온 음원이 대히트를 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2017년에 소속 연예인들의 대마초 적발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안 좋아졌었고 믹스나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망했었다. 2018년 시가총액이 JYP엔터테인먼트에 추월당하면서 업계 3위로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2019년 초에는 버닝썬 게이트라는 사건까지 터졌었다. 그래도 현재는 BLACKPINK의 흥행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 JYP엔터테인먼트 - 1999년 ~ 2010년, 2016년 ~ 현재
-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소속된 가수들의 국내 무대에서의 음원 성적이나 가요 프로그램 1위들을 SM과 YG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던 시기다. 또한 두 회사와는 다르게 이 시기 동안은 단 한 번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멜론 뮤직 어워드 등의 굵직한 대중가요시상식에서 단 한 번도 대상을 가져가지 못한 시기다.
- FNC엔터테인먼트 - 2014년 ~ 2016년 5월
- DSP미디어 - 젝스키스의 데뷔(1997년 4월) ~ 카라의 해체(2016년 1월)
- 코어콘텐츠미디어 - 1999년 ~ 2012년 7월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 직전
-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 2015년 ~ 2018년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 2012년 ~ 2019년 10월
- 씨스타의 대히트로 전성기를 열었고 한 아이돌 오디션 시리즈에서 4회 연속 데뷔 멤버를 배출했지만, 그 이면에서 조작에 적극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 2018년 ~ 현재
5.2. 외국
- 미국
- 노 리미트 레코드 - 1990년대 중후반
- 데스 로우 레코드 - 1992년 ~ 1996년
- 루슬리스 레코드 - 1988년 ~ 2002년
- 배드 보이 레코드 - 1994년 ~ 2003년
- 애프터매스 엔터테인먼트 - 1998년 ~ 현재
- 자이브 레코드 - 198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 캐시 머니 레코드 - 1990년대 후반 ~ 현재
- 영국
-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 - 1985년 ~ 1990년
- 일본
6. 외국 가수
6.1. 영미권 가수
- 록
- 머틀리 크루 - 1981년 ~ 1989년
- 메탈리카 - 1983년 ~ 현재진행형
- 엘비스 프레슬리 - 1956년 ~ 1960년대 초
- 비틀즈 - 1963년 ~ 1970년[60]
- 아이언 메이든 - 1982년 ~ 1992년, 2003년 ~ 현재진행형
- 엘튼 존 - 1970년 ~ 1976년, 1992년 ~ 1997년[61]
- 주다스 프리스트 - 1977 ~ 1990년
- 퀸 - 1975 ~ 1982년, 1985 ~ 1986년
- 딥 퍼플 - 1968년, 1970 ~ 1972년, 1974년
- 레드 제플린 - 1970~ 1977년
- 블랙 사바스 - 1970 ~ 1975년
- 오아시스 - 1994 ~ 1997년[62]
- Nirvana - 1991년[63] ~ 1994년
- 아마이아 몬테이로 - 2001 ~ 2007년[64]
- Green Day - 1994년 ~ 1996년, 2003년 ~ 2006년
- KISS - 1976 ~ 1979년, 1992년, 1998년, 2009년, 2014년
- 뮤즈 - 2003년 ~ 2014년
- 린킨 파크 - 2000년 ~ 2008년, 2010년 ~ 2017년 7월 6일
- 댄스
- 발라드 등
- 힙합
- 게토 보이즈 - 1990 ~ 1993년
- 구디 맙 - 1995 ~ 1998년
- 그레이브디가즈 - 1994년
- 노토리어스 B.I.G. - 1994 ~ 1997년
- 다 브랫 - 1994년, 2000년
- 닥터 드레 - 1992 ~ 1993년, 1999 ~ 2000년
- 독 파운드 - 1995년
- 레드맨 - 1992 ~ 2001년
- Lil Wayne - 1997 ~ 1999년[75] , 2004 ~ 2013년, 2018년 ~ 현재진행형
- 마스터 P - 1996~1998년
- 매직 - 1998~1999년
- 미스티컬 - 1995 ~ 2001년
- 버스타 라임스 - 1996 ~ 2001년
- 빅 타이머스 - 2000 ~ 2003년
- 사이프레스 힐 - 1991 ~ 1995년, 2000년
- 소울자 슬림 - 1998년
- 스눕 독 - 1993 ~ 1994년, 2004 ~ 2008년
- 스파이스 1 - 1992 ~ 1994년
- 실크 더 샤커 - 1998 ~ 1999년
- 쓰리 식스 마피아 - 1997 ~ 2005년
- 아웃캐스트 - 1994 ~ 2007년
- 아이스 큐브 - 1990 ~ 1993년
- 아이스-T - 1987 ~ 1993년
- 에미넴 - 1998~2004년, 2009년 ~ 현재진행형
- 우탱 클랜 - 1993 ~ 2001년
- 워런 G - 1994년
- 자 룰 - 2001 ~ 2004년
- 쥬브나일 - 1997 ~ 2006년
- 투 라이브 크루 - 1986 ~ 1991년
- 투 쇼트 - 1988 ~ 1996년
- 투팍 샤커 - 1991 ~ 1996년
- 트릭 대디 - 1998 ~ 2006년
- 퍼블릭 에너미 - 1988 ~ 1991년
- B.G. - 1997 ~ 2001년
- C-머더 - 1998 ~ 2000년
- JAY-Z - 1996년 ~ 현재진행형
- N.W.A - 1988 ~ 1991년
- Run-D.M.C. - 1984 ~ 1993년
- Cardi B - 2018년 4월 6일 1집 정규 앨범 Invasion of Privacy ~ 현재진행형
- 니키 미나즈 - 2010년 11월 11일 1집 정규 앨범 Pink Friday ~ 현재진행형
6.2. 일본 가수
6.2.1. 솔로
- 미소라 히바리 - 1952년 ~ 1967년
- 사카모토 큐 - 1960년대
- 사와다 켄지 - 1973년 ~ 1981년
- 야마구치 모모에 - 1974년 ~ 1980년 은퇴
- 사이죠 히데키 - 1974년 ~ 1979년
- 노구치 고로 - 1975년 ~ 1979년
- 마츠토야 유미 - 1975년 ~ 1998년
- 나카지마 미유키 - 1975년 ~ 2000년 〈地上の星〉
- 고 히로미 - 1977년 ~ 1984년
- 타하라 토시히코 - 1980년 ~ 1983년, 1988년 ~ 1989년
- 마츠다 세이코 - 1980년 ~ 1985년, 1996년 〈あなたに逢いたくて〉
- 콘도 마사히코 - 1981년 ~ 1987년, 1996년 〈ミッドナイトシャッフル〉
- 나카모리 아키나 - 1982년 ~ 1988년
- 코이즈미 쿄코 - 1984년 ~ 1991년
- 오자키 유타카 - 1985년 ~ 1992년
- 나카야마 미호 - 1986년 ~ 1992년
- 미나미노 요코 - 1987년 ~ 1988년
- 아사카 유이 - 1988년
- 쿠도 시즈카 - 1988년 ~ 1994년
- 모리타카 치사토 - 1989년 ~ 1995년
- 아무로 나미에 - 1995년 ~ 1997년, 2008년 ~ 2018년 은퇴
- 우타다 히카루 - 1998년 ~ 2001년
- 하마사키 아유미 - 1999년 ~ 2003년
- 마츠우라 아야 - 2001년 ~ 2003년
- 히라이 켄 - 2002년 ~ 2005년
- 오오츠카 아이 - 2003년 〈さくらんぼ〉
- 니시노 카나 - 2010년 〈Best Friend〉 ~ 〈if〉, 2015년 〈トリセツ〉
- 캬리 파뮤파뮤 - 2012년 ~ 2014년
- 호시노 겐 - 2016년 〈恋〉
6.2.2. 그룹
- 캔디즈[76] - 1975년 ~ 1978년[77]
- 핑크 레이디 - 1977년 ~ 1978년
- 사잔 올 스타즈 - 1979년, 1982년 ~ 1985년, 1992년 ~ 2000년
- The Alfee - 1983년 ~ 1985년
- 안전지대 - 1984년 ~ 1987년
- 체커스 - 1984년 ~ 1987년
- 소년대 - 1986년 ~ 1989년
- BOØWY - 1986년 ~ 1987년
- 히카루GENJI - 1988년 ~ 1993년
- wink - 1989년
- X JAPAN - 1989년 ~ 1997년
- B'z - 1990년 ~ 2005년
- 차게 앤 아스카 - 1991년 〈Say Yes〉 ~ 1993년 〈YAH YAH YAH〉
- ZARD - 1992년 ~ 1996년
- WANDS - 1992년 ~ 1994년
- 미스터 칠드런 - 1994년 ~ 현재진행형
- SMAP - 1994년 ~ 2000년 (1차), 2003년~2008년 (2차)[78]
- TRF - 1994년 ~ 1995년
- TOKIO - 1994년 ~ 1995년, 2006년 〈宙船〉
- globe - 1995년 ~ 1999년
- V6 - 1995년 ~ 1997년
- GLAY - 1996년 ~ 2000년
- SPEED - 1996년 ~ 1998년
- KinKi Kids - 1997년 ~ 2001년
- L'Arc~en~Ciel - 1998년 ~ 2000년
- 아라시 - 1999년 〈A・RA・SHI〉, 2007년 ~ 2020년
- 모닝구 무스메 - 1999년 ~ 2001년
- Perfume - 2007년 ~ 현재진행형
- EXILE - 2007년 ~ 2011년
- AKB48 - 2010년 ~ 2011년, 2013년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79]
- GOLDEN BOMBER - 〈女々しくて〉[80]
- SEKAI NO OWARI - 2015년 ~ 현재진행형
- 노기자카46 - 2017년 ~ 현재진행형[81]
[1]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전성기가 끝나버렸다.[2] 당시 MBC에서는 그랜드쇼 - 토요일토요일밤에를, KBS는 가요대행진을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송했다.[3] 참고로 말하자면 2005년 마지막 수상자 김종국 수상의 공정성 논란이 아닌, 김종국이 받기 전 즉 2005년 전부터의 시상식 공정성이다.[4] 당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OST로 사용되며 애절한 멜로디와 가사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5] 김정수와 급행열차라는 그룹으로 활동한 앨범.[6] 드라마 '첫사랑' OST로 수록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7]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에 오른 앨범이며, 1990년에 가수왕을 차지했었다.[8] 1990년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부른 곡을 리믹스한 곡이다.[9] 당시 시청률 1위를 달리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비공식 OST로 사용되면서 대박을 쳤다.[10] 사실상 원히트 원더에 가깝다.[11] 1998년 2월 11일 가요톱10 마지막 1위곡이자 마지막 골든컵 수상곡이다.[12]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표절과 관련해 잠정 은퇴를 발표하는 등 흑역사급 공백기를 가져왔기에 별도 구분한다.[13] 음원 최다 기록은 방탄소년단의 MAP OF THE SOUL : PERSONA이다.[14] 김추자의 원곡을 번안.[15] 2002년 3집 타이틀곡이지만 이때는 거의 묻혔다가, 2004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OST로 뒤늦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16] 박정현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본격 비쥬얼 가수로 등극했다.[17] 무조건을 멤버송으로 채택한 1박 2일 덕분에 전성기가 연장되었다는 의견도 있다.[18]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3주 연속 트리플크라운, MBC 음악캠프 5주 연속 1위, KMTV 쇼뮤직탱크 5주 연속 최강자를 기록.[19] SBS 인기가요 3주 연속 뮤티즌송 트리플 크라운, MBC 음악캠프 2주연속 1위, 엠넷 엠카운트다운 2주 연속 1위, KMTV 쇼뮤직탱크 2주 연속 1위를 기록.[20] MBC 음악캠프 2주 연속 1위, KMTV 쇼뮤직탱크 통산 1위 1회를 기록.[21] 특히 X맨을 찾아라에서는 2005년 하반기 최고의 대세조합이었던 하하, 박명수, 김종국의 '하명국' 조합에 대항한 지상렬, 이성진과 함께 '지진테' 조합을 형성하며 프로그램 내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시기다.[22] SBS 인기가요 통산 1위 1회, MBC 쇼음악중심 통산 1위 1회, 엠넷 엠카운트다운 통산 1위 1회, KMTV 쇼음악중심 통산 1위 2회를 기록.[23] 나중에 무혐의로 밝혀졌다.[24]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박정희에게 직접 하춘화의 생사여부가 보고된 적이 있다.[25] 위의 서술된 현미의 곡과는 다른 곡이다.[26] 정식 앨범도 없이 가요제 대상 수상곡만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아울러 그 해 신인상, 최고인기 가요상, 10대 가수상을 동시 석권했다.[27] 스테디한 인기로 단일 앨범으로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골든디스크 본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28] 전영록의 작사로 유명한 곡이다.[29] 전영록 작사.[30] 가요톱10 역사상 마지막 여가수 1위곡.[31] 타이틀곡 외에도 임재범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상처'도 큰 화제가 되었다.[32] 김범수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가요계의 요정으로 등극했다.[33] 작품성이나 연기 실력을 본격적으로 인정받은 시기로는 2018년 나의 아저씨가 거론되기도 하나, 대중적 파급력은 호텔 델루나가 압도했다.[34] 아이유가 현재의 위상을 갖게 되는 데 결정적 홈런을 날린 곡이었다.[35] tvN 드라마 도깨비 OST가 나온 후 2018년 5월 말까지 약 17개월 차트 안에 있었다.[36] 타이틀 곡이 2개인 관계로 앨범명으로 기재한다. 이후에는 배우로 주로 활동했다.[37] 김민종과 손지창이 듀엣으로 결성한 그룹이다.[38] 애인이 생겼어요, White Love (스키장에서), X[39] 4집 뿐만 아니라 1집, 2집, 3집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었다.[40] 사실상 원히트원더에 가깝다.[41] 겁쟁이-가시-나에게로 떠나는 여행[42] 명곡들이 수두룩한 그야말로 클래지콰이의 전성기 시절을 대변하는 명반이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몇 안 되는 2000년대 음반이다.[43] 베이비복스가 2004년에 발매한 음반은 기존과는 달리 힙합 요소가 강해 전보다 인기는 식었지만 국내에서 두터운 팬층과 중국에서 활동을 활발히 했다.[44] 박유천에 묻혀서 그렇지, 김준수와 김재중도 여러 구설수와 논란이 있다.[45] 원더걸스 멤버 중 유난히 외모에서 정변과 역변을 거듭한 멤버.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유빈 리즈시절"을 검색하면 So Hot 활동 당시 사진들이 나온다.[46] 활동 당시 남초사이트를 시작으로 유빈이 So Hot 시절과는 다른 분위기로 전성기를 되찾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조금씩 나타났고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 제대로 전성기에 가깝게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47] 이 이후에도 발매한 곡 모두 멜론 주간 최상위권은 기본으로 기록하는 등 꾸준히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텔미-쏘핫-노바디 시절의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었다.[48] 문서에서도 서술되었듯이 개인활동은 가수 활동보단 배우 활동이 더 많다.[49] 정진운은 후에 무혐의를 받긴 했다.[50] 티아라 사태의 경우는 오히려 류화영의 일방적인 자작극이었음이 밝혀졌고, 그와 함께 기존의 티아라 멤버들은 모두 이미지들을 회복했다. 하지만 사건의 여파로 인해서 그 뒤 활동에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51] 당시에 선정적 안무 문제와 설현의 부상으로 인한 활동 중단이 있었다.[52] 타노킨 트리오(たのきんトリオ) 열풍.[53] 체커스 바람에 잠시 주춤했다가 소년대, 히카루GENJI 등의 활약으로 다시 강세를 보인 시기.[54] 90년대 초 잠깐 있었던 침체기를 SMAP이 깨면서 다시 전성기 시작. 이후 TOKIO, V6, KinKi Kids, 아라시 등 지금도 활약 중인 그룹들이 데뷔.[55] 2016년 SMAP 해체, 2018년 소속 가수들의 잇따른 스캔들, 2019년 아라시의 활동 휴지 선언 등 악재가 겹치면서 전성기가 끝난 것 아니냐는 평도 있다.[56] 모리타카 치사토의 히트.[57] TM NETWORK로 데뷔한 가수이지만 프로듀서로서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58] 자신이 프로듀싱한 곡이 4년 연속으로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59]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과의 제휴로 아무로 나미에, MAX, SPEED, DA PUMP 등을 배출했던 시대.[60] 활동 기간 동안 발매한 대부분의 정규 앨범들과 27개의 싱글이 영·미 차트 1위에 올랐고, 대부분의 앨범들이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61] 1970년 8월 미국 데뷔 공연 시기부터 1976년까지 6년간을 최전성기 시절로 평가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침체를 겪다가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의 상업적 성공 및 음악성 부활, 1992년 23집 The One, 1994년 라이온 킹 사운드트랙의 대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몇 년간 보내었다.[62] 정확히는 3집 발표 이전이다. 사실 3집 투어는 전설적이었지만 3집 이후로 슬럼프가 계속 되고 3집 자체도 혹평을 받았다.[63] 1991년 9월 24일 발매한 Nevermind 2집 정규 앨범이다.[64] 정확히는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탈퇴 이전까지다.[65] 보통 2013년 11월 11일에 발매한 ARTPOP 3집 정규 앨범 이전까지를 전성기로 본다.[66] 1984년 11월 12일 발매한 2집 정규 앨범 Like A Virgin부터 1990년 3월 27일 발매한 Vogue 싱글 곡까지를 최전성기로 본다.[67] 잠시 위기를 맞았다가 음악적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콘서트 투어로 여전히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68] 단순히 댄스 가수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전성기는 정확히는 1993년 그래미 시상식 이전이다. 독보적인 전성기를 지냈던 가수로, 자세한 내용은 마이클 잭슨 문서 참조.[69] 무혐의 판결이 난 사건이지만, 성추문 사건에 휘말렸고, 마이클 잭슨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그 후에 낸 음반들은 복합적인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데뷔 이래 최정상으로 군림했던 기간이 매우 길었던 음악가였다.[70] 이혼 후 패리스 힐튼과 놀러다니며 최악의 침체기를 맞다 그 해 말 'Womanizer', 다음해에 '3'로 그녀 커리어의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었다. 그 인기는 7집 'Femme fatale'까지 이어졌었다가 이후로는 다시 침체기이다.[71] 데스티니스 차일드 시절을 제외한 솔로 커리어이다. 놀랍게도 현재까지 쇠퇴기를 맞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음악적으로 더 인정받고 있다.[72] 이 시절 이후 머라이어 캐리와 낸 'When you believe'가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마약과 이혼 등으로 고생하다가 2009년 재기에 성공했으나 전성기 시절에 비해 형편없어진 가창력으로 실망감을 안겼고 그 뒤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73] 일본 시장에서의 인기까지 포함하면 1998년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 그 후 이혼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몰락했다가 2005년에 재기했다.[74] 데뷔 앨범의 리드 싱글인 I Kissed a Girl의 빌보드 1위부터 Teenage Dream의 상업적 대박 PRISM 앨범의 싱글인 Roar과 Dark Horse가 대박을 쳤지만 최근에 나온 싱글들을 보면 4집이 PRISM의 기록을 뛰어 넘을수 있을지가 의문이다.[75] 핫 보이즈 시절 포함이다.[76] キャンディーズ[77] 이토 란(伊藤蘭, ラン), 다나카 요시코(田中好子, スー), 후지무라 미키(藤村美樹, ミキ)로 구성된 현대적 의미로서의 최초의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1973년 데뷔 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75년 '연하의 남자(年下の男の子)'가 히트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1977년 7월 공연 도중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고, 1978년 4월 4일 고라쿠엔 구장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했다. 이후 이토 란과 다나카 요시코는 배우로 활동했고, 이토 란은 파트너의 스기시타 우쿄 역으로 유명한 배우 미즈타니 유타카(水谷豊)와 결혼했다. 소녀만화 <캐릭캐릭 체인지>에 나오는 아무의 수호캐릭터들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78] 1991년 데뷔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93년 기무라 타쿠야가 드라마 <아스나로 백서>에서 주목을 받고 난 후 서서히 대중들의 주목을 받다가 1994년 첫 오리콘 1위를 하면서 1차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1년 이나가키 고로가 여경을 차로 치는 사건을 일으킨 후 침체기에 빠져있다가 2002년 고로의 복귀 이후 다시 부활하는 기미를 보이고 2003년 世界に一つだけの花가 대히트를 기록한 후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비록 2차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2008년까지이기는 하나 그 후에도 아라시와 함께 쟈니스의 최고 인기 그룹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이다가 2016년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79] 2010년 발매한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이 대히트를 치면서 2011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로 인기 멤버들이 졸업하면서 하락세를 띄나 했더니 2013년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현재 AKB는 10년이 넘은 그룹으로 새로운 팬들의 유입이 적기 때문에 다시 상승세를 띄기 힘들다.[80] 2009년 발표곡인데 2011년부터 서서히 역주행, 2012년 8월 27일부터 오리콘 노래방 차트 51주 연속 1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이 곡으로 NHK 홍백가합전 출장을 했다.[81] 현재 일본 최고 대세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インフルエンサー (인플루언서) 싱글이 판매량 100만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