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목록/국가
1. 한반도
1.1. 대한민국
- 1988 서울 올림픽~1997년 외환 위기 직전: 요약하면 민주주의 발전과 시민 사회, 문화 성장+사회 개혁 기조[1] +물가안정[2] +경제성장[3] 이 모두 이뤄진 시기.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대전 엑스포도 이 때 개최했으며, 세계화 추세 속에 WTO와 OECD에도 가입을 했다.
물론 추억보정이 된 측면도 있어서 국민소득과 생활수준, 시민의식이나 경제규모는 현재가 당시보다 당연히 좋아졌지만, 청년실업이나 소득분배 등은 이때가 더 나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방송사들의 활약도 늘어나 당시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들과 드라마, 사극 등이 흥행을 거뒀다. 또 이때를 기점으로 방송시간과 아침방송도 점점 늘어났으며 오전방송도 늘어났고 심야방송이 최초로 허용되었다. 그리고 SBS가 개국하고 KBS3가 EBS로 독립하면서 지상파 4사 체제가 확립되었다. 투니버스 등 케이블 채널도 이때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중적으로 삐삐와 휴대폰이 발전을 해 1인 통신기 시대가 열렸고, 최신 전화기들도 많이 도입되었다. 참고로 이동통신 산업도 점점 민영화가 된다. PC통신도 이때가 최대 전성기였고 인터넷과 컴퓨터도 점점 보급되기 시작한다.[4]
대외적으로는 북방외교도 활성화되어 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가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지지율 방어 차원이긴 하지만[5]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조폭들을 소탕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의 전성기도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정경유착이나 빨리빨리 문화, 안전불감증 심화로 인한 부실공사에 따른 대형 참사들이 많이 일어나 상당수 시민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민주화가 달성되기는 했지만 권위주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등 공권력의 인권침해가 90년대 초중반까지도 이전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유지되었던 것 또한 이 시절의 그림자라고 볼 수 있다.[6] 또한 이 전성기를 끝내버린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을 방기했다는 점도 이 시절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7][8]
1.2. 고조선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어서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고고학적인 자료를 보면 정가와자 문화로 비정되는 시기인 기원전 6세기에서 연나라와의 전쟁이 있기 이전인 기원전 290년대 무렵까지가 요녕성 전역과 길림성 일부, 한반도 북부를 제패한 전성기로 보이며 기원전 323년에 연나라에 맞서 천자의 칭호인 왕을 칭할 정도였다. 다만 이 당시의 기록이 왕의 이름과 재위기간도 알수없을 정도로 매우 빈약한것이 문제다. 그리고 위만조선 대는 대체로 강성한 편이었으며, 우거왕대에 멸망하긴 했지만 우거왕에 대한 한무제의 침략 동기가 강성해진 위만조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전성기로 볼 수가 있다.
1.3. 삼국시대
1.3.1. 부여
'''기록이 없다.''' 그나마 단편적인 기록이라도 남은 금와왕 때를 전성기로 봐야 한다.
1.3.2. 고구려
고구려의 경우 전성기가 '''100년'''을 넘었다는 게 특징이다. 소수림왕부터 안장왕까지 기간은 무려 '''160년'''에 달한다. 장수왕의 치세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때 닦아놓은 기틀이 멸망 때까지 그대로 갔다. 중흥군주로는 평원왕과 영양왕이 꼽힌다.
1.3.3. 백제
백제는 근초고왕~근구수왕 때 전성기였다가 이후 100여 년간의 침체기와 혼란기를 거친다. 한 때 비류왕~개로왕 때 중흥, 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실패를 했고 24대 왕인 동성왕이 중흥의 발판을 닦은 후 무령왕#s-1, 성왕에 이르는 중흥을 거쳤다가 관산성 전투의 패전으로 50여 년간의 침체와 쇠퇴를 겪었다. 그리고 30대 왕인 무왕 때 '''다시''' 중흥하여 의자왕 15년까지 유지되었다.
1.3.4. 신라
신라의 경우 지증왕 때 기틀을 잡고 이후 진흥왕 때 고구려, 백제, 가야를 모두 제압하고 영토를 3배로 불리며 상대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나, 진흥왕의 공세로 크게 몰락한 백제가 다시 안정을 찾고 중흥을 바탕으로 한 여제+왜 삼각동맹으로 인해 진지왕 이후의 신라는 외교적으로 고립, 한동안 수세적으로 몰리게 되어 유지에 급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삼국통일전쟁 시기가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만,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 치세 전반기는 말 그대로 신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과 같았던 시기라 국력이 절정에 올랐던 전성기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교과과정에서도 통일 이전 신라의 전성기는 진흥왕대로 잡는 편이다.
1.3.5. 가야
1.3.5.1. 금관가야(전기 가야)
그나마 있는 기록을 살펴본다면 금관국은 창업군주인 수로왕 시대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진변한 지역에서 작은 나라끼리 분쟁이 일어났을 때 수로왕에게 판결을 구할 정도로 영향력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광개토대왕의 남정 직전인 4세기 후반부 이시품왕 시기가 신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므로 전성기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야는 모든게 추측의 영역이긴 하다.
1.3.5.2. 대가야(후기 가야)
반파국(대가야), 즉 후기 가야의 전성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초반. 당시 어느 왕 재위기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불분명하지만 이 때 백제가 개로왕이 살해당하고 헤롱거릴 때 전북, 전남 동부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신라의 앞마당이 된 낙동강 대신 섬진강 유역을 통해 국제 무역을 계속했으며, 가야 역사상 유일하게 중국에 사신을 보내 국제적으로 가야국의 위치를 공인받기도 했다.
1.4. 남북국시대
1.4.1. 발해
발해의 경우 기록이 적어서 후기의 상황에 대해 알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대건황 사후로 쇠퇴기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
1.4.2. 통일신라
통일신라는 676년 삼국통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오랜 전란기를 끝내고 안정을 찾아 토지와 인구가 늘어나는 한편, 통치제도가 정비된 것에 힘입어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 전성기는 신문왕~혜공왕에 이르는 100년 동안 이어졌다. 삼국사기 시대구분상 무열왕계가 대를 이어 즉위한 중대#s-4와 겹친다.
1.5. 고려
- 광종부터 경종까지는 노비안검법, 최승로의 시무 28조 등의 영향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 현종의 여요전쟁 승리 이후 100여 년간. 이 시기는 내정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강성했던 시기다. 특히 문종 사후 그의 아들들 재위 기간엔 국력이 막강해져서 당대 강국인 거란(요) 사신이 지각하자 이를 놀리는 기록도 남아 있을 정도다. 선종 문서 참고.
1.6. 조선
일반적으로 15세기 전체를 조선의 전성기로 치는 편. 태조, 정종 때는 발전기였고 이후 태종, 세종, 문종 때는 최전성기였다. 단종 이후로는 계유정난의 악영향으로 약간 둔화되지만 여전히 성종 때까지는 전성기였다. 하지만 연산군 10년에 벌어진 갑자사화 이후로 조선은 점점 침체기로 빠진다. 그 뒤 중종, 인종 때 침체기가 지속이 되었다. 다만 이 때는 약간 침체된 수준에 가까웠으나 명종 때 오면서 윤원형과 정난정의 횡포로 국력이 점점 약화되면서 혼란기로 빠져든다. 선조 때 약화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거의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국력이 계속 피폐해졌다. 임진왜란 종전 이후에 피폐해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어느정도 회복되어 나가는 듯 보이다가 광해군이 즉위하는데 이후에도 중립외교 시도 등으로 어느정도 피폐해진 국력이 조금씩 회복되는 듯 했지만......대북파의 횡포와 연이은 옥사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은 계속 피폐해져 갔다. 인조 때는 이괄의 난, 이충경의 난, 유효립의 난 등이 일어나면서 계속 국력이 피폐해졌고 병자호란으로 계속 국력은 피폐해졌다. 병자호란 이후 피폐해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다시 시도되는데 효종, 현종 때 들어서면서 피폐해진 국력은 점점 회복되기 시작하고 국력이 점점 회복세로 접어든다. 하지만 경신대기근의 여파로 인해서 국력이 약간 쇠퇴한 적이 있었으나......그 이후 숙종 때 마침내 중흥의 발판을 놓는데 성공했고, 영조, 정조 때는 중흥에 성공하는데 영정조 치세인 18세기 중후반은 왜란과 호란으로 피폐해진 국력이 거의 안정된 중흥기로 분류한다. 하단의 분류와 같이 숙종 시절의 경우, 영정조 시절의 앞단의 중흥준비기로 보기도 하나, 조선 후기 당시 인식은 태평성대로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19세기 수많은 한글 소설이나 구전 설화들의 시작이 '숙종대왕 호시절에'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숙종 치세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워낙 치세가 길었기 때문에, 각종 변란과 기근 또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전성기에는 그림자도 있는데 태조~태종 시기 왕자의 난 등 칼부림이나 숙청, 단종~성종 시기 계유정난, 세조 찬위, 단종복위운동, 이시애의 난, 남이의 옥, 폐비 윤씨 사사 등의 정치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고 세조 때 공신들의 횡포도 그 시기 전성기의 그림자로 꼽힌다. 숙종, 영조, 정조 때의 중흥준비기 및 중흥기에도 그림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수많은 환국 및 역모, 반란 사건 등으로 당쟁의 균형이 뿌리뽑힌 것이 그 때 중흥기의 그림자일 것이다.
1.7. 북한
- 사실 북한은 이때도 독재 국가였고 지금 와서 보면 거의 대부분의 측면에서 전성기라고 따지는 것 자체가 좀 부질없긴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이전까지만 해도 나름 먹고 살만은 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50년대부터 1960년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197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1980년대 이후부턴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하지만[12] 북한 자체로만 보면 5~60년대엔 경공업 기반, 70년대 후반부턴 농업 기계화를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어획량도 많아서 명태를 무상으로 지급하기까지 했다. 1974년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세금을 없애는(...) 정책도 시행했다. 광물 수출 등으로 제한적 풍요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주체농법이라는 미친 법이 시행되고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과 류경호텔의 무리한 건립으로 1980년대 중후반기부턴 착실하게 망조가 드는 중에, 남한에서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제행사를 치른 것에 존심이 상했는지 평양학생대축전이라는 맞대응식 돈지랄 정책을 벌이고,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붕괴로 인해 해외 교역도 차질이 생기자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결국엔 1995년 고난의 행군으로 극빈국으로 전락하는 치명타를 맞이하게 된다.
2. 일본
이 시기에 에도 막부가 이끄는 일본은 장기간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성기를 이어나갔으며, 이 때 쌓아둔 자본은 일본이 근대화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본격적인 근대화는 아니었지만 포르투갈, 네덜란드를 비롯한 당대 서구 열강들과 조금씩 접촉하며 근대적인 학문과 기술, 문물들을 알아가던 시기도 이 때였다.
- 메이지 유신부터 태평양 전쟁 패배 때까지. 이 시기는 일본 극우와 넷우익들에게는 영광스런 시절이었지만[13] , 한반도의 국가들, 중국,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국가들에게는 치욕적인 시절이자 흑역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때는 일본 서민들의 질도 타 서구열강에 비해 높지 못했고 전시 체제에 돌입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시절이 이어졌다.[14] 다만 서구권 국가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도 어깨 싸움은 할만한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측면에선 이견이 없다.
- 6.25 전쟁 이후인 1954년 진무경기부터 일본 거품경제가 한창 끼던 1989년까지의 시기 및 버블시기의 영향이 남아 경제 문화적 융성을 이루던 1990년대 후반까지.[15] 이때는 사회적으로도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자랑했으며, 평화헌법 체제 아래 경제 올인 전략을 펼쳐 경제적으로도 당시 G2였던 소련을 따라잡고 국민소득이 "'아시아 국가 중 1위"'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3. 중화권
3.1. 중화인민공화국
- 개혁개방 정책 이행기 ~ 2010년대 중반까지[16]
3.2. 중화민국
건국(1928년)~국공내전 이전: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기엔 중국 내륙을 거머쥐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에 참전했으며 UN의 상임이사국까지 지닐만큼 나름 위상이 대단했다. 허나 국공내전으로 타이완 섬으로 쫓겨나면서부턴 망했어요.
사실 국부천대 이후에도 대만 자체적으로 보면 적당한 경제성장과 사실상 중화문명 유일의 민주 체제를 갖추면서 양안관계와 미중 갈등 속 선봉장 격으로 나름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3.3. 홍콩
- 영국령 홍콩 시절.
3.4. 마카오
3.5. 상나라
3.6. 주나라
3.7. 춘추시대
3.7.1. 정나라
3.7.2. 제나라
3.7.3. 진(晉)
진문후 재위기간 BC 780~BC 746[30]
진헌공 재위기간 BC 676~BC 651[31]
진문공 재위기간 BC 636~BC 628[32]
진양공 재위기간 BC 627~BC 621[33]
진도공 재위기간 BC 573~BC 558[34]
3.7.4. 초나라
초무왕 재위기간 BC 740~BC 690[35]
초문왕 재위기간 BC 689~BC 675[36]
초성왕 재위기간 BC 671~BC 626[37]
초목왕 재위기간 BC 625~BC 614
초장왕 재위기간 BC 613~BC 591[38]
초혜왕 재위기간 BC 488~BC 432[39]
3.7.5. 진(秦)
진목공 재위기간 BC 659~BC 621[40]
3.7.6. 오(춘추시대)
합려 재위기간 BC 514~BC 496[41]
부차 재위기간 BC 495~BC 473[42]
3.7.7. 월나라
구천 재위기간 BC 496~BC 464[43]
3.8. 전국시대
3.8.1. 제나라
제위왕 재위기간 BC 378~BC 343(사기), BC 356~BC 320(죽서기년)[44]
제선왕 재위기간 BC 342~BC 324 사기, BC 319~BC 301 죽서기년[45]
제민왕 재위기간 BC 323~BC 284, BC 300~BC 284[46][47]
3.8.2. 조나라
조양자 재위기간 기원전 457~기원전 425[48]
조무령왕 재위기간 기원전 325년~기원전 299년
조혜문왕 재위기간 기원전 298년~기원전 266년[49]
3.8.3. 연나라
연소왕 재위기간 BC 311~BC 279[50]
3.8.4. 위나라
위문후 재위기간 BC 445~BC 396[51]
위무후 재위기간 BC 395~BC 370[52]
3.8.5. 진나라
진효공 재위기간 기원전 361년~기원전 338년[53]
혜문왕 재위기간 기원전 337년~기원전 311년[54]
소양왕 재위기간 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
진시황 재위기간 기원전 246년 ~ 기원전 210년[55]
3.8.6. 초나라
초도왕 재위기간 BC 401~BC 381[56]
3.9. 전한
3.10. 후한
3.11. 5호 16국
3.11.1. 전진
부견 재위기간 357년 7월 ~ 385년
3.12. 남북조시대
3.12.1. 북위
탁발규 재위기간 386~409
명원제 재위기간 409~423
태무제 재위기간 423~452
효문제 재위기간 471~499
3.12.2. 유송
유유(송무제) 재위기간 420~422
유의륭 재위기간 424~453
3.12.3. 양나라
양무제 재위기간 502∼549
3.13. 수나라
수문제 재위기간 581년 3월 4일 ~ 604년 8월 13일[61]
3.14. 당나라
당태종 재위기간 626년 9월 4일 ~ 649년 7월 10일
당고종 재위기간 649년 7월 15일 ~ 683년 12월 27일[62]
측천무후 재위기간 690년 10월 16일 ~ 705년 2월 22일[63]
당현종 재위기간 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
당헌종 재위기간 805년 8월 9일 ~ 820년 2월 14일
3.15. 5대10국
3.15.1. 후주
시영 재위기간 954 ~ 959
3.16. 송나라
3.16.1. 북송
송태종 재위기간 976년 11월 15일 ~ 997년 5월 8일
송진종 재위기간 997년 5월 8일 ~ 1022년 3월 23일
송인종 재위기간 1022년 3월 23일 ~ 1063년 4월 30일
송신종 재위기간 1067년 1월 25일 ~ 1085년 4월 1일
송철종 재위기간 1085년 4월 1일 ~ 1100년 2월 23일
3.16.2. 남송
송효종 재위기간 1162년 7월 24일 ~ 1189년 2월 18일
3.17. 요나라
요태종 재위기간 927년 12월 11일 ~ 947년 2월 24일
요성종 재위기간 982년 10월 14일 ~ 1031년 6월 25일
3.18. 금나라
금태종 재위기간 1123년 9월 27일 ~ 1135년 2월 9일
금세종 재위기간 1161년 10월 27일 ~ 1189년 1월 20일
3.19. 서하
숭종 재위기간 1086년 8월 21일 ~ 1139 7월 1일
서하 인종 재위기간 1139년 7월 ~ 1193년 10월 16일
3.20. 원나라
3.21. 명나라
3.22. 청나라
4. 몽골
5. 그 외 나라
5.1. 북아메리카
- 미국 : 사실 과장 좀 보태 건국 이후 Always 전성기긴 하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이후 존 타일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이전까지[67] , 남북전쟁 종전 ~ 경제 대공황 이전[68] ,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 베트남 전쟁 철군 이전까지, 냉전이 마무리되어가던 1980년대부터 9.11 테러 발발 이전인 2001년까지[69] , 2010년대 셰일 혁명 시기부터 현재까지.
5.2. 중앙, 남아메리카
- 엘살바도르: 1969년 축구전쟁, 1980년대 엘살바도르 내전 발발 이전까지. 온두라스와의 축구전쟁과 좌익 반군과 우익 정부군과의 내전이 발발하기 이전 전간기와 1940, 1950, 60년대 당시 엘살바도르는 중미 지역에서 현재 중앙아메리카의 부국인 파나마나 코스타리카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 잘 사는 국가 중 하나였다.[74]
5.3. 유럽
에게 해(에게 문명) - 고대 로마 시절, 대항해시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특히 '''벨 에포크''' (그리고 북서유럽 자본주의 진영 한정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오일 쇼크 이전까지[75] ,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이뤄진 독일 통일 이후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영국: 월리엄 2세 ~ 헨리 1세, 헨리 2세 ~ 리처드 1세, 에드워드 1세 시대, 에드워드 3세 시대, 헨리 5세 시대, 리처드 3세 ~ 헨리 7세,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 제임스 1세, 찰스 2세 즉위 후 영란전쟁 ~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오일 쇼크 이전까지,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있을 때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프랑스: 샤를 7세부터 앙리 2세 때까지, 앙리 4세 시기, 루이 14세 시대, 나폴레옹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샤를 드골 집권기부터 오일 쇼크 이전까지, 프랑수아 미테랑 집권 중반기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독일: 독일 제국 시대[78] , 통일 이후 유럽 연합 결성 시기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 스페인: 16세기 초반~17세기 중반(카를로스 1세 ~ 이베리아 연합 해체 시까지), 18세기~나폴레옹 전쟁 이전, 1975년 왕정복고 이후 ~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
- 네덜란드: 1588년 ~ 1702년, 1815년 ~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 폴란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시대 및 야기에우워 왕조
- 유고슬라비아: 요시프 브로즈 티토 치세
- 스웨덴: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즉위 후~대북방전쟁 전까지(스웨덴 제국)
- 노르웨이: 북해 유전 발견 이후 현재진행형
5.4.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집권기
- 카타르: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 집권 이후
- 신강 위구르: 카라한 칸국, 서요[86] 의 지배, 차가타이 칸국의 통치시기, 모굴리스탄 칸국, 야르칸드 칸국,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5.5. 아프리카
- 이집트: 고대 시대 전부
- 리비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집권기[89]
- 나미비아: 샘 누조마 집권기
- 짐바브웨: 쇼나 왕조 시대
- 우간다: 분뇨로 왕국 시대
5.6.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 라오스: 란상왕국 시기(특히 술리나봉사 왕 시기)
- 말레이시아: 말라카 왕국, 1971~현재진행형
- 미얀마: 바간제국 및 꼰바웅 왕조 시기
- 캄보디아: 크메르제국 시기(특히 수리야바르만 2세, 자야바르만 7세 시기)
- 태국: 라마 1세 시기
- 나우루: 1970 ~ 80년대
6. 관련 문서
- 각국 명군이 통치한 기간고 각국의 전성기는 큰 연관이 있다.
7. 참고 문헌
- 가로세로 세계사 (전 4권) - 이원복 저. 김영사.
[1] 금융실명제와 사회문화 분야 규제 철폐 등 대대적인 개혁과 정치권의 부패 해소 등 자정 노력, 탈권위주의 등이 이뤄진 소위 한국의 혁신기는 노태우 정부 혹은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로 많이들 보는 편이다.[2] 다만 노태우 정부 시절엔 부동산 문제로 곤욕을 치루긴 했다.[3] 1988년에 수출 500억 달러를 뛰어넘었으며 1995년에는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하게 된다. 1인당 국민소득 5천 달러와 1만 달러도 이시기에 달성했다.[4] 다만 지금같은 대중화는 IMF 이후다. PC방이 급속히 늘어난 시기와도 일치한다.[5] 재미있게도 소위 이런 리즈 시절 당시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은 낮았다. 노태우는 1년차 중반 이후부턴 꾸준히 낮았고, 김영삼은 집권 초기만 해도 당대 기준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2년차 중반부터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하더니 말년엔 IMF특급행.(...)[6] 물론 이건 정권 교체와 인터넷 문화 보급 등으로 21세기 들어 급격히 개선되긴 한다. 즉,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 혁신기를 90년대부터 2천년대까지로 봐야 한다.[7] 사실 외환위기는 이전 군사정부 시절부터 쌓인 적폐가 시기상 불운하게 터진 것에 가깝지만, 어찌됐든 김영삼 정부가 그것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건 사실이었다. 덕분에 정권교체도 되고 그게 민주주의적 측면에선 오히려 도움이 된 측면도 있지만...[8] 사실 경제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화되어 체감경기가 후퇴한게 가장 큰 문제지, GDP 자체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 차단과 분야 전문화, IT, BT, 한류 등 신산업 벤처기업 육성, 구조조정 등을 통한 체질 개선으로 인해 IMF 이후 오히려 더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그러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몇년간 휘청이기도 했지만 2010년대 초반부턴 다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9] 655년의 정변 이전까지 한정한다면 전성기 못지 않은 힘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 후엔 갈피를 못잡다가 망했어요.[10] 현종과 그의 아들 덕종, 정종, 문종 때까지를 최전성기로 보기도 한다.[11] 예종 사후 고려는 급격하게 쇠락했으며 다시는 재흥을 꾀하지 못했다.[12] 애초에 1960년 남한 인구가 이미 북한의 약 2.2배였다. (세계은행 기준 남한 2501만, 북한 1142만.) 즉, 국력 자체로만 보면 광복 직후부터 이미 벌어지기 시작한 것. 당연한 말이지만 인구가 적으면 경제성장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13] 다만 좌익들에게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절 등은 호평받기도 한다. 주로 반극우들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어쩌다 군국주의로 이 지경이 되었을고라는 한탄이 섞인 시절이라면, 극우들은 대동아공영을 내세워 지들 딴엔 명분상으로도 나쁘지 않고 몇년뿐이긴 했지만 일본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구축했던 위대한 태평양 전쟁 드립을 치는 편.[14] 당장 무진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른 시기가 이 시기다. 천황과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목숨 따윈 걍 바치라는 식의 군국주의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던 것.[15] 내실로만 보면 1970년대까지가 리즈였고, 80년대 들어선 이미 거품이 한창 끼던 시기긴 했다.[16]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건 1980년대부터긴 하나, 국력 측면이나 사회적 변화 측면에서 봤을땐 (미국인들이 보통 1990년대 당시의 미국을 최고로 꼽듯) 중국인들은 보통 후진타오, 원자바오 집권 시기인 2000년대~2010년대 초반을 리즈 시절로 꼽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이때도 1당 독재인건 변함이 없어서 사실 중국의 리즈 시절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좀 부질없는 측면은 있으나,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부턴 1당 독재를 넘어 시진핑의 1인 독재 장기집권이 가시화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노골적인 견제, 홍콩 민주화 운동 문제 등 눈으로도 보이는 내외부적인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기어코 2020년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안일한 초기 대처와 중국 특유의 전랑외교로 인해 전세계적 전염병 유행의 발원지로 지목되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눈총을 받는 등 고립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향후 행보가 난감한 부분.[17] 다만 마카오의 부는 사실상 도박 산업으로 쌓은거라(...) 좀 평이 미묘하긴 하다.[18] 달리 상고종, 무정이라고 불린다.[19] 단, 이 기간은 실제 전성기라기보다는 중흥기에 더 가깝다.[20] 인재들을 등용하여 주나라의 힘을 키웠다.[21] 사기 기준[22] 상나라를 멸망시켰다.[23] 이 세 왕대가 주나라의 전성기다.[24] 주나라의 중흥기.[25] 호나라를 멸망시켜 세력을 떨침.[26] 종주국 주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노나라, 송나라 등과 싸우면서 패권을 펼침. 준패자에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것도 정나라의 전성기임을 설명 가능하다.[27] 자산이 있을 때 한정. 이때는 정나라의 중흥기다.[28] 정확히는 관이오가 상국일 때 한정.[29] 안영 집권시기 한정.[30] 주평왕을 도와 낙읍 천도에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분수 유역으로 세력을 떨쳤다.[31] 순식의 계책을 받아들여 차도멸괵을 하여 진나라의 힘을 크게 떨쳤다.[32] 이렇게 갭이 생겼던 이유는 진문공은 근 20년 동안 유랑을 했기 때문이다.[33] 진문공의 패권을 상당히 유지했음.[34] 13~14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매우 총명하여 진문공의 패업을 되일으킨 중흥기였다.[35] 당시 강남 지역의 나름 강대국인 수나라를 복속시킴[36] 식나라를 멸했다. [37] 패자가 되려 한 송양공을 이겼고, 진(晉)나라와 싸울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38] 춘추오패다.[39] 오나라의 침략과 이어 백공승의 난 등으로 쑥대밭이 된 상태에서 집권하여 현명한 대신들의 보좌를 받아 장기간 재위속에 초나라를 다시 중흥시켰으며 대외적으로는 진, 채나라를 멸국치현시켰다.[40] 백리해, 건숙 등의 현자를 등용해 국력을 키웠다.[41] 오자서와 손무를 등용해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42] 월나라를 쳐서 한때나마 속국으로 만들었고, 회맹을 주도할 정도로 강력함을 과시했다. 단, 오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간 암군이기도 하다. 이유는 오자서 말 안 듣고 백비말 듣고 구천을 살려줘서 복수할 기회를 줘버린 셈이라..[43] 부차에게 당한 한을 풀기 위해 부차의 똥을 핥아서 병을 진단하는 등의 신임을 받아 풀려난 뒤 범려, 문종과 함께 국력을 키워 오나라를 멸해 패자가 된다.[44] 글항아리 사의 김영문이 번역한 동주 열국지도 죽서기년의 그것을 따랐다. 처음에는 초장왕처럼 막장 짓을 하다가 추기의 간언을 듣고 위에서 탈출한 손빈을 등용해 국력을 키움.[45] 손빈과 전기를 등용해 당시 강국이었던 위나라를 상대로 승리하였다.[46] 전자가 사기, 후자가 죽서기년.[47] 연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고, 송나라를 멸해 그 땅을 독차지함. 단, 재위 후반기에 연나라의 악의에게 털려서 좀 미묘하다.[48] 삼진을 분할해 조나라의 기반을 세웠다.[49] 근거는 염파와 인상여의 활약으로 천하의 진나라 소양왕이 감히 조나라를 노리지 못했다.[50] 악의를 등용하여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51] 서문표를 등용해 업 지방을 안정시키고, 악양을 등용하여, 중산국을 멸했다.[52] 문후 시절의 패권을 어느 정도 유지하였다.[53]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실천하고 당시 강대국인 위나라를 물리쳤다.[54] 장의의 연횡책을 활용해 전국 7웅들을 쥐고 흔들었다.[55] 통일 이전까지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통일 이후에는 폭군 기질을 보여서 미묘하다.[56] 오기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실천했다.[57] 부친인 문제와 함께 문경지치라 하여 한나라의 황금기를 만들었다.[58] 흉노를 떡실신 시켰지만 전쟁통에 경제가 망가져 당대 백성들이 고생했다.[59] 전한의 중흥기.[60] 강희제 등과 함께 중국사의 명군으로 꼽힌다.[61] 천하통일만 한 게 아니라 나라도 잘 다스려 국고가 가득 차 세금을 받지 않는 해도 있었다고 한다.[62] 고구려, 백제를 신라의 도움을 받아 멸했다.(...)[63] 외치는 몰라도 내치는 괜찮았다.[64] 단, 원나라의 일본 원정 실패로 인해 미묘.[65] 중국사 최고의 명군으로 거론되기도 한다.[66] 과거에는 중국사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받았으나, 현재는 거품이 끼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에 따라 위의 옹정제를 실질적인 중국사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67] 이 때가 미국의 발전기였다.[68] 전쟁 이후 국력이 급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 절정을 찍었다. 일명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다만 알다시피 거품 제거를 못해 10년도 못가 대공황...[69]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미국인들은 1990년대의 호황기를 미국 최고의 시절로 꼽는 편이다. 여전히 1위의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IT 버블이 꺼지기 무섭게 테러와의 전쟁과 그 뒤를 잇는 사회의 보수화,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대침체를 겪으면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삶의 질 하락과 심리적인 위축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70] 물론 마야 문명의 경우 멕시코 일대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아즈텍과는 달리 멕시코 뿐만 아니라 과테말라,벨리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같은 다른 중미 국가들도 마야 문명권에 속해 있었기에 딱 한 나라의 역사라고만 하기엔 애매하다.[71] 위의 중남미 원주민 문명은 스페인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전근대 시기인데다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공유하는지라 멕시코 자체만의 역사라고 보기 애매하지만 이 시기야 말로 실질적인 멕시코의 전성기라 볼 수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 아구스틴 1세에 의해 멕시코 제국이 등장하면서 그 거대한 누에바에스파냐 영토의 대부분을 통째로 가지게 되었다. 그 영토의 크기는 중미 대륙 전역과 현 미국 중부의 일부와 미 남부, 서부를 통째로 가진 정도. 물론 아구스틴 1세가 쿠데타를 당하는 등 여러모로 정치적인 병폐가 있긴 했으나 적어도 근현대 멕시코만의 역사를 언급할 때 독립 이후부터 미국-멕시코 전쟁 전 까지의 시기를 전성기로 보는게 중론이다.[72] 다만 이 때는 빈부격차가 심했다.[73] 세계에서 수위권을 다투던 부국이었으나 1929년 미국발 대공황으로 직격탄을 맞고 군사독재 및 농업, 축산업 등 1차 산업 위주의 국가 산업을 뜯어고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부국의 대열에서 이탈한다.[74] 물론 정치가 잘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군부 쿠데타와 민정의 내분이 자주 빈발했다.[75] 사실 이 시절에는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세계의 주도권을 미국과 소련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경제 호황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대다수 서민들의 삶의 질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의 풍요로운 복지 국가 이미지는 이때부터 실현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76] 2차 포에니 전쟁을 기점으로 지중해의 최강자 자리까지 일사천리로 떠올랐으나, 킴브리 전쟁을 기점으로 군인의 사병화가 심해지며 마리우스와 술라를 필두로 한 로마 내전이 간헐적으로 벌어졌다.[77]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들였는지 그 조그만 나라의 무역 수입이 프랑스 전체 세입을 뛰어넘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1503년 후에도 1669년 크레타의 상실 전까지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었다.[78] 통일 이후 단기간에 더욱 가파른 산업 성장을 이루어 1차대전 직전에는 본국의 생산력이 영국을 능가하였으며 당시 과학, 기술, 예술의 다수 분야에서 세계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79] 정치적 자유가 없었던 공산당 독재 체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윗나라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에 비하면 통치는 비교적 온건했던 편이었다.[80]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저지하고 전후 빈체제의 일원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리즈시기. 이후로는 전근대성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 및 타 열강의 견제 등으로 기울어진다.[81] 사회주의 국가라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론 대공황이 터진 1930년대부터 이미 G2 국가였으며 특히 2차세계 종전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진 미국과 함께 전 세계에 둘 밖에 없는 초강대국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냉전을 벌였다. 지금 러시아의 GDP 순위는 소련 시절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니 어찌보면 러시아 중장년층 이상 세대에서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있는게 이해도 가는 부분. 물론 자유가 없던 소련은 그립지 않다고 말하는 젊은 층도 많은 편이나 문젠 푸틴으로 대표되는 현 러시아 집권 세력이 거의 독재화되어서...[82] 유럽에서 '악마의 수호를 받는 무적의 군대'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에 못 따라가 점점 쇠퇴하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유럽 열강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했으며, 명맥만은 잇고 있다가 1922년에 멸망했다.[83] 아랍 국가 중 딱히 어느 나라의 역사로 둘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애매한 편이다.[84] 호라즘의 수도였던 우르겐치(코네우르겐치)는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다. 하지만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은 오우즈계 투르크이며, 옛 호라즘 왕조의 투르크 주민들은 킵차크계에 해당되었다.[85] 일단 일부분 불안정한 면도 있지만 대체로 국경 일대 및 점령지와 접하는 곳 일부만 제외하면 안정적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에 반감을 가진 일부 이스라엘 아랍인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86] 거란계 유민들이 세웠지만 대다수가 튀르크였고, 문화, 사회, 경제 등은 여전히 튀르크를 계승했기에 튀르크족 역사로 보기도 한다.[87] 흑양 왕조와 백양 왕조는 사파비 왕조의 모티브가 된다.[88] 물론 어느정도 불안정한 모습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아랍권에서 현재까지 거의 유일하게 개방적이고 개혁과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잘 정착된 나라 중의 하나이며, 치안도 리비아 국경 지대만 제외하면 크게 불안정한 사회도 아니다.[89] 물론 리비아내 반카다피 세력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90] 사실 1인당 GDP로만 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도박 산업을 유치하면서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아 본토화되면서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금융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경찰국가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의 사회 통제는 싱가포르 사회의 선진화에 제약이 되고 있다. [91] 인도네시아도 민주화가 이뤄진 2000년대 이후 주목할만한 GDP 성장을 하고 있긴 하다.[92] 왕조 국가의 역사가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의 나라들과 달리 필리핀은 스페인, 미국의 식민화 이전 이슬람교가 강세였던 민다나오 섬 등 남부 지역을 제외하면 왕조 국가의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93] 물론 향후 전성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은 많다.